5년 전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의 권유로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저명한 작가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저서인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구입했다. 이 세상을 ‘빨리빨리’ 살아야 하는 한국 사람으로서 한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라 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읽었지만 이해하기가 그리 쉬운 책은 아니었고 지루한 여행 중 특별한 감격은 느끼지 못했었다. 지난해를 마무리하며 서재에 널린 책들을 정리하다가 손에 잡힌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난 오늘 이 책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쉴 새 없이 급급하게 살아온 날들을 회고해 보고 또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귀한 책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현대 사회는 머리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신속한 동작과 반응, 예리한 시선, 날씬한 외모, 선명한 윤곽 속에 반짝이는 생동감에 넘쳐흐르는 사람들”을 현대인이라 묘사하고 있다. 급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혼돈 속에서 자칫하면 가치관이나 방향감을 잃게 되는 현대 문화는 신속한 생각과 반응 그리고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기증 나는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 순식간에 지구 한 끝에서 다른 한끝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결핍돼있는 상태에서 조급하게 서두르며 살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신중하게 배려하고 고려해보는 여유를 갖지 못하며 주관적으로 설득하거나 혹은 결정해버리기를 좋아한다. 기다려주는 풍조가 사라지고 빨리빨리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치관의 초점과 균형을 잃고 사는 것이다. 한 영혼이 자신의 생각으로 결단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인내심은 사라져 버리고 상대방에게 무리를 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고 비평하기가 일쑤다. 그리고 허둥지둥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마음의 자유로움과 평정을 잃고 마음은 혼동되거나 무질서해 지고 있음이다.
저자는 “느림은 배려 깊고 부드러우며 여유 있는 넉넉한 삶”으로 표시 하고 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행동과 동작의 속도를 뜻함이 아니며 여유 있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를 뜻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조급증으로 무질서해지는 마음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이웃의 형편을 마음속 깊이 새겨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존엄성과 영혼의 가치관이 고속도로 움직이는 시간 속에 파묻혀 그 지혜와 판단력이 무뎌지고 있음이다.
등산할 때 “산의 정상을 보고 서둘러 오르지 말고 산의 옆과 주위를 살피며 여유 있게 오르라”는 말이 있다. 산의 정상을 보고 서둘러 등산을 하면 정상을 정복하려는 승부욕으로 쉽고 빠르게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르는 길에서 산 주변의 진정 아름다운 풍경과 창조의 신비로움은 보고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상만을 보고 오르면 산은 정복의 대상이 되어 정작 왜 산에 오르고 있는지는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산을 오르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그 아름다움으로 삶의 진리를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것 보다 더 보람 있는 것임을 망각하게 된다.
빠르게 산다는 것은 마음속에 쌓여지는 갈등과 원망과 욕심과 미움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시간에 쫓기고 조급증에 시달리며 사는 인생이지만 삶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마음의 휴식과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창조의 신비로움을 마음속 깊이 새겨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점을 상대방에 맞추어 그의 아름다운 품성과 생각을 깊이 있게 음미해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마음의 여유로움과 영적인 풍요로움이 없이는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교만과 불만을 다스릴 수 있는 영혼의 풍요로움이 없이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수도 없고 세상에서 자신이 남기는 삶의 흔적마저도 살펴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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