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열두 달의 운세를 판단하는 토정비결은 조선의 중기학자이자 기인으로 알려진 토정(土亭) 이지함(1517~78)이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토정은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생애의 대부분을 지내며 뭇 백성들과 아픔을 같이했는데, 호 토정은 여기에서 연유하게 된다.
장작이 불에 타 흙집을 데우면 원적외선 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방사되어 인간에게 기를 보충해준다는 황토구들장의 원리를 이미 토정은 몇 백 년 전에 알았음으로 흙으로 된 움막에서 생활하였던 것은 아닐까. 혹은 우주의 기운 중에서 토의 기운이 부족하여 이 기운을 보충하기 위하여 토담 움막집에서 살았을 거라고도 추측해 본다. 하지만 단지 미래를 예지하는 역술가로서의 삶이 아니라 백성을 자신보다 우선으로 여기고 자신의 건강과 삶을 희생한 선각자의 흔적은 이러한 추측을 할 수 없게 한다.
토정은 의술과 점술에 능하여 백성들로부터 굶지는 않겠는지, 병치레는 안 하겠는지 등의 궁금한 점들에 관하여 문의를 받게 된다. 관직에 있을 때 민생 돌보기에 힘썼던 토정인지라 이를 해결 해주기 위하여 무지한 백성도 쉽게 신수를 볼 수 있는 비결을 지었는데 이를 토정비결이라 이름 하였다. 한편 토정의 저작이 아니라 민간에 나돌던 복서(卜書)에 토정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토정비결은 주역의 384가지의 형상에서 144가지의 형상으로 줄이고 연월일시 중에서 시를 제외한 3가지 인자로 판단하여 주역보다 부정확하나 길흉화복을 위주로 구성된 것에 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144가지의 괘상 풀이를 한 토정비결은 여러 성인들과 공자에 의해 완성된 주역의 384괘상에서 뿌리를 두고 비롯하게 되었다. 384가지 상(象)에 대한 뜻을 해석하고 이치를 밝히기 위하여 공자는 말년에 책을 엮은 가죽 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보았다 한다. 또한 자신이 죽은 이후로부터 이백여 년 후에 진시황제가 유학의 책들을 불태울 것을 미리 예견하고 주역을 점서형태로 바꾸어 소실되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공자의 예지력 덕분에 주역은 유교의 경세제민 사상의 토대로서 유학 경전 중에서도 수경(首經)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양을 근거로 한 법칙은 후세의 동양의술과 역술과 관련된 명리학, 자미두수, 하락이수, 구성사주학, 육효, 풍수 등의 모든 분야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384괘의 상은 보다 차원 높은 형이상학적인 고찰을 하도록 하게 하여 앞으로도 더욱 깊은 연구의 과제를 남겨놓았다. 또한 우주와 인간의 모든 도를 심성이 바르지 못한 자가 알게 되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하여 배울자의 인격을 분별하여 그 격에 맞추어 전수 하였다.
이지함의 토정비결도 주역의 384가지의 형상 중에서 144가지로 설명을 줄인 이유는 몽매한 백성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고자 함이며, 일반인이 이를 모두 자세히 알면 오히려 해로운 영향이 있으므로 내용들을 삭제하여 재편집했으리라 여겨진다.
한편 공자는 일평생동안 주역의 384가지의 괘의 이치와 뜻을 연구함과 더불어 십익을 추가하여 내용전달에 치중하였고, 삶의 형태를 384가지로 한정함에 크게 한탄하며, 형상을 늘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크게 통탄 하며 나에게 하늘이 시간을 더 준다면 이 작업에 남은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우주의 이치를 밝힌 주역에 심취하였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점술이나 절대자에게 의지하여 해결 하려함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할 때 일수록 점술의 역할은 절대자의 자연계시적인 형상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여 이를 참조 하도록 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하고, 인간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굳건히 하여 운의 행로의 주체적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올해 경인년(庚寅年)은 작년 못지않게 시끄러울 것이나 여러 덕목들 중에서도 지혜와 강건함 만이 모든 난관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근본인 양성의 경금(庚金)이 땅의 성향인 음성이 아닌 양성인 튼실한 인목(寅木)을 만나 힘이 모자라는 형국이므로 경금이 강건함을 키우든가 강한 인목을 약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물에 담글 지혜(壬水)가 필요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허 정 박사
상학연구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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