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계의 역학구도로 본다면 지금처럼 이민개혁안 성사에 좋은 때는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이민개혁은 헬스케어 개혁과 함께 민주당의 대표적 숙원 중 하나고 지금 워싱턴은 ‘민주당 천하’다. 일단 숫자상으로 그렇다. 상원은 꿈의 60석, 하원은 공화당보다 78석이나 많고 과반수보다 40석이나 위다. 단합만 하면 어떤 법안이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막강 다수당이다. 설사 오바마가 재선된다 해도 오늘 같은 민주당 천하는 다시 맞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새해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솔직히 어두운 편이다. 지난 주말엔 미국주재 멕시코대사까지도 “현 경제상황에서 이민개혁안 추진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히 물밑 로비만을 벌여온 그로선 이례적인 공개 발언이었다.
지난 몇 년 민주당의 의석수가 불어난 선거가 끝날 때마다 기대와 좌절을 거듭해온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현주소도 희망과 실망 사이, 중간쯤이다 :
지난 1년은 기다림의 시기였다. 취임 첫해의 이민개혁을 다짐했던 오바마의 공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기회복과 헬스케어 개혁이라는 우선과제를 이해하면서도 이민사회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오바마는 6월말에 가서야 의회관계자들과 첫 회의를 마련했고 8월에 이민단체들과 면담을 가졌다. 11월엔 국토안보부 장관이 2010년 초반 개혁안 본격추진을 공개 약속했고 12월 중순엔 드디어 하원에 개혁안이 상정되었다.
민주당 하원 246명 중엔 불법체류자 사면포함 개혁안을 공개 반대한 의원만도 30여명에 달한다. 중간선거가 다가오니 보수지역 의원들의 반대가 더 확산될 것은 확실하다. 이들의 재선을 보호해야하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개혁안 상정에 단서를 달았다. “상원에서 먼저 처리되지 않으면 하원 표결은 없다” 책임과 선거전의 껄끄러운 논쟁을 동시에 피해 갈 전략인 셈이다.
이민개혁안의 새해 토의는 상원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민 소위원장인 민주당의 찰스 슈머와 공화당의 린지 그래엄이 함께 만든 ‘초당적 합의안’이 2월이 가기 전에 상정되면 히스패닉 유권자가 급증하는 네바다에서 재선을 치러야하는 해리 리드 민주당 대표가 개혁안 심의를 상원 일정표에 포함시킬 것이다. 60석 붕괴가 거의 확실해질 중간선거 전에 통과시키려면 3월부터 심의해 7월전에 표결하자는 이민단체들의 ‘희망사항’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2007년 개혁안 상원 좌절 때 표결은 찬성 50 반대 45였다. 이민의 대부 에드워드 케네디의원이 살아있었고 히스패닉계 의원이 2명이나 있었을 때였는데 민주당에서 반대가 15표나 나왔다.
이 같은 의회 판세에 장외 여건까지 더해보면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금년내 개혁안 실현 확률은 50%를 넘을 듯싶지 않다.
연내 실현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아직 한겨울이다. 내 직장과 내 집을 잃게 된 유권자들에게 이민개혁은 강건너 불이다. 이런 무관심이 극우그룹의 반이민 선동에 자극받으면 한순간에 분노로 바뀔 것이다. 의원들이 분노한 표밭의 눈치를 보며 손익계산을 시작하면 개혁안은 한걸음 더 밀려날 것이다. 지지도가 하락하며 정치적 자산을 소진해버린 오바마의 압력도 재선 위기에 직면한 의원들에겐 별 영향력을 못 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실현 가능성의 근거도 있으니까. 재선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공약이니 아직은 믿을 만하다. 게다가 이 테러위기의 시대에 국가안보상으로도 1,200만 서류미비 인구를 방치할 수는 없다 : 이들의 사진, 지문, 모든 신원사항과 함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추적 가능하도록 기록되어야 한다.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면 GDP가 10년간 1조5천억 달러나 증가한다는 보고서도 나왔고 ‘이민의 나라’ 미국의 인도적 가치관을 정면 부인하는 미국인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민단체들의 지적처럼 개혁안 추진은 “행정적으로 필요하며 도덕적으로 중요한” 과제일 뿐 아니라 이젠 “정치적으로도 현명한” 전략이 되고 있다.
금년 선거의 이슈는 긴급한 테러변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단 한 가지, 경제일 것이다. 물론 이민개혁이 미국경제 성장에 장기적 동력이 된다는 이성적 연구결과가, 표밭에서 “우리 일자리를 뺏어가고 세금을 축낸다”는 감정적 반이민 아우성을 잠재우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이민개혁’이 전통적 표밭의 방향을 바꾸는 이슈도 아니다. 그러나 이민자 표밭을 움직일 수는 힘은 가졌다.
2008년 선거에서 라틴계 유권자는 980만, 아시아계는 340만으로 집계되었다. ‘이민법 개혁’을 고대해온 수백만 표에 대한 신의는 민주당이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이번 주는 ‘포괄적 이민개혁위한 행동주간’이다. 미전국 곳곳에서 집회와 행진, 의회에 엽서보내기 등 지지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우리도 조금씩 힘을 보탠다면 새해엔 100만명의 대학생, 25만명의 한인을 포함한 그늘 속 이웃들도 밝은 햇빛으로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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