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한인산악회
▶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3>
곳곳의 오색 깃발은 티벳인의 소망 담겨
라싸 시내엔 한족들 이주·문명 유입 느껴
달라이 라마 살았던 사원 순례 신비감마저
티벳은 색의 나라다. 오색 룽다가 어디서나 나부낀다. 그래서 그 색은 각인이 된다. 모든 보이는 존재가 다 색이다. 하늘, 땅과 물과 바람과 허공으로 티벳 산하 곳곳에 타르쵸에 무수히 꽂혀 있는 다섯 가지 색이 그것이다. 물을 상징하는 청색, 하늘을 상징하는 흰색, 불을 상징하는 붉은 색, 바람을 상징하는 녹색, 땅을 상징하는 노란색 깃발들이 달리는 말의 갈기 같다는 룽다가 소망을 담아 살아 있다.
북경 역에서 칭짱열차를 타고 2박3일 만에 티벳고원의 하늘 길을 지나 라싸 역에 도착했다. 역은 썰렁했다. 기차 칸칸이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금세 사라진 것인지 우리 일행들만이 썰렁하게 모여 있었다.
“아! 여기도 중국 땅이구나. 비상상태라지 참”
제복을 입은 중국 공안원들의 무언의 통제가 느껴졌다. 짐을 끌고 역 밖으로 나오니 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지 받아 곧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을 한 가이드가 버스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라싸 시내 중심가는 꽤 번잡했다. 수많은 한족들이 물밀듯 티벳으로 몰려 들어와 하루가 다르게 현대적 빌딩과 마켓들과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칭짱철도의 개통으로 경제발전이 가속화 되겠지만 환경은 훼손되고 전통문화에 큰 변화가 올 조짐이 느껴졌다. 티벳의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 정부는 칭짱철도로 쾌락의 병균을 매일매일 실어 나르는 것은 아닐까 한다. 정치적인 속박과 구속은 불가항력이지만 문화만이라도 티벳인들이 지키면서 살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사방이 사막과 산맥으로 둘러싸인 데다 평균 고도가 높은 불모지역이라 일찍부터 고유한 전통문화가 발달, 비교적 훼손당하지 않고 보전돼 온, 특히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20세기를 맞이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그래서 티벳을 ‘영혼의 성소’라 주저 없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시내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든 음식을 고춧가루를 범벅해서 식탁이 울긋불긋 했다. 며칠 만에 제대로 된 음식, 더군다나 한식이라 반가웠으나 고소 기차여행의 여독으로 많이 먹지는 못했다.
“타시딜레!”
티벳과 티벳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말이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이 말은 묘한 흡인력을 갖고 있어서 단번에 서로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서로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방금 배운 ‘타시딜레’를 빨리 외우려고 아무나 보고 인사한다. 호텔에는 우리 원정대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시설이 꽤 괜찮은 곳이다. 이삼일을 제대로 씻지를 못한 우리 일행은 잠자리로 서둘러 향했다. 3,700미터에 위치한 라싸에서의 첫날밤이다.
티벳 여행자가 만나야 할 것이 꼭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유순하고 단순하게 사는 티벳 사람들을 만나 봐야 하고, 둘째는 텅 비고 광활한 고원의 풍경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하고, 셋째는 불가사의한 사원을 순례해 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티벳 여행의 목적을 사원 순례에 두고 왔다. 내일 달라이 라마가 살았던 포탈라 궁을 보게 된다니 적잖이 설레는 것이다. 약간의 어질 머리로 잠을 편안히 자지는 못했다. 여기 라싸에서 삼일 정도 머무르며 고소를 적응하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는 포탈라 궁으로 향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전통 옷을 입고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권의 경전을 다 읽은 셈이 된다는 ‘마니챠’(손에 들고 돌리면서 공덕을 비는 원통형 기구)를 돌리면서 사원들을 순례하는 수많은 순례객을 먼저 만났다. 포탈라 궁 전체 외곽을 마니챠를 돌리며 걷고, 그 도는 걸음을 ‘코라’라 한다.
티벳의 주도 라싸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포탈라 궁은 정치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백색 궁과 종교적인 신의 권한을 누리는 적색 궁이 퍼즐을 맞추듯 조합적 합일로 서 있다. 포탈라 궁은 티벳어로 ‘깨끗한 땅’, 즉 ‘성지’라는 뜻 또는 ‘관세음보살이 사는 곳’이다. 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믿는 달라이 라마의 거처를 뜻한다.
7세기 손챈캄포 시대부터 적어도 1,000여년 동안 지어 비로소 완공한 것으로써, 13층 높이에 동서 길이만 해도 360미터나 되고 방이 1,000개 이상이며, 수천 킬로그램의 금을 부어 축조한 스투파(탑)들과 극상으로 화려한 불상들, 고승들의 미라, 그리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탱화들로 가득 찬 불가사의의 건물이다. 모든 종교적 문화터전을 파괴했던 문화혁명 때조차 주은래가 자신의 군대를 파견해 포탈라 궁을 지킨 것만 봐도 그 가치가 놀랍다. 티벳에는 포탈라 궁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만명 이상의 승려가 수도 정진할 수 있는 사원이 많이 있고, 속설로 한 때 티벳에선 인구의 절반이 승려였다고 한다.
어찌 이런 불모의 땅에서 이렇게 화려한 불교문화를 폭발적으로 꽃 피울 수 있었단 말인가. 삶의 조건이 열악할수록 뛰어 넘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강력해지는 것이다. 외부적 조건보다 더 강하고 오묘한 영혼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면 어디에선 또 다른 충만한 세계에 대한 갈망과 염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수필가 정민디>
티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룽다’. 불경이 새겨진 룽다는 티벳인들의 다양한 소망과 기원을 담고 있다.
티벳 순례객들이 ‘마니챠’를 돌리며 거리를 걷고 있다.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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