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어조는 단호했고 질책은 신랄했다. 연말휴가에서 귀임한 직후인 6일 대통령은 안보 및 정보기관 책임자들을 총 소집한 ‘테러 서밋’을 개최했다. 2시간 내내 엄중했던 회의를 마친 그는 테러대응체계의 구조적 실패를 인정하고 대대적 개혁을 선언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날 끔찍한 공중참사로 이어질 뻔 했던 여객기 폭탄테러 기도사건의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 “정보를 수집하는데 실패한 게 아니라 이미 가진 정보를 통합하고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정보기관들이 충분하게 확보한 정보들을 분석 연결시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어? 전에 들어본 말인데. 언제더라, 애쓸 것도 없이 기억이 생생하다. 9.11 위원회가 2004년 똑같은 지적을 했었다. 당시 정보기관들의 파워 다툼, 공조 부재로 인한 정보 분석 실패를 테러의 주원인으로 지적한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부시행정부도 정보시스템의 ‘대대적 개혁’을 단행했었다. 현재 16개 연방소속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ODNI)이 모든 정보의 통합·분석·조정을 담당하는 정보의 수장으로 신설된 것이 그때였다.
시스템을 개혁하고 엄청난 인력과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국가의 이미지, 국민의 사생활 침해 등을 대가로 치르는 테러전쟁의 5년이 흘렀다. 그런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23세 나이지리아 청년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의 미국행 여객기 탑승을 금지시켰어야 하는 정보는 몇 달 전부터 미 정보기관들을 통해 ‘충분히 수집’되었다. 5월엔 영국이 그의 비자 재발급을 거부하면서 ‘요주의 인물명단’에 올렸고 그가 예멘으로 건너간 8월엔 국가안보국(NSA)의 예멘 소재 알카에다 통신감청 중 ‘우마르’’파루크’’나이지리아 인에 의한 미국공격’등의 단어가 흘러나왔으며 11월엔 그의 아버지가 미대사관 CIA요원에게 아들이 예멘서 보낸 수상한 문자메시지 내용을 전하며 과격 이슬람이 된 아들의 위험성을 통보했고 12월 암스테르담 공항에선 미국행 편도 비행기표를 현금으로 산 청년이 아무런 짐도 없이 노스웨스턴 항공기를 타고 있었다.
그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어느 기관을 통해서라도 압둘무탈라브의 테러위험성은 감지되어야 했다. 아버지를 통해 수집된 CIA의 정보가 NSA의 감청정보와 연결되었더라면 용의자의 탑승은 확실하게 사전 차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라는 미국의 방대한 정보조직의 어느 한 사람도 수집한 정보의 ‘점선 잇기(connect the dots)’를 하지 않았다. 국무성은 그의 미국비자를 취소하기는커녕 소지여부조차 체크하지 않았고 대테러센터는 ‘확증’이 없어 그를 요주의인물 명단에 올리지 않았으며, 이륙전 모든 승객명단을 보고 받는 국토안보국, 수상한 승객이 탔다싶으면 이륙 후에라도 회항명령권을 가진 교통안전국의 아무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강경질책에 바짝 긴장한 정보기관장들은 긴밀한 협력 통한 허점 개선을 거듭 다짐하지만 실무선의 정보 분석가들이 직면한 현실은 다르다. 우선 정보의 양부터가 망망대해다. 120개의 데이터베이스를 총괄하는 대테러센터 수퍼바이저가 하루에 처리해야하는 정보가 1만2천건에 달한다. 이중 유효한 정보 걸러내기는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다. 현재 55만명인 ‘요주의인물 명단(Watch list)’과 4천명인 ‘탑승금지 명단(No-fly list)’은 항공보안검색 강화에 따라 앞으로 3배, 4배로 늘어날 것이다. 건초더미는 매일 높아지는데 어떻게 바늘을 찾을지…
현실적으로 힘든 것은 정보의 점선 잇기 만이 아니다. 테러전쟁 자체가 그렇다. 승리와 패배의 정의부터가 단순하지 않다. 국민의 생사가 걸린 테러에 초강경 대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군사력으로 테러집단의 근거지를 뿌리 뽑고 용의자의 미 입국을 전면 금지시키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자면 부산물이 생기기 마련이다. 국내의 패닉상태와 해외의 반미정서 - 그런데 이것이 바로 테러의 궁극적 목표다.
오바마 행정부의 테러정책은 오늘 발표되는 예비보고서를 시작으로, 다음 주 연방의회가 개회하면서 하나씩 정착될 것이다. 정보시스템 개혁은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핵무기 다루듯 완벽하게 보강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항공보안검색 강화는 수위조절이 필요하다. 14개국 출신자에 대한 표적검색이나 전신투시 알몸검사에 대한 비판이 이미 국내외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효과에 비해 12억 무슬림의 반미감정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까지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새해벽두부터 ‘테러 정국’에 발목 잡힌 오바마의 고충이 깊어질 부분이다.
이틀 전 CNN의 래리 킹이 테러정책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테러전쟁, 이길 수 있는 전쟁인가?” “예스”라는 자신 있는 대답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박 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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