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호랑이띠의 해인 경인년(庚寅年) 새해 아침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몽골체험기’ 를 애독하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오며 성원해 주신 분들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칼럼은 우리 주인공의 애절하기 그지없는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은 황제들이 거처했던 곳이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3,000천의 여인을 거느렸다. 3,000개의 방이 말이 달릴 수 있는 길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방들 앞에는 말이 물을 마시기 좋은 위치에 물통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면 왜 후궁들의 방 앞에 물이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엿장수가 하루에 엿가위를 몇 번 치느냐는 물음에 엿장수 마음대로 친다는 말이 있다. 황제는 밤을 함께 지낼 여인을 간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허나 그것도 숫자가 몇 천이 되고 보면 고르는 작업 자체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 황제가 외출 후 귀성 할 때 황제의 말이 물을 마시는 그 물통의 여인이 그 날 밤 자신의 잠자리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고르는 골치 아픈 작업(?)을 말에게 맡기기 위하여 물통이 준비된 셈이다. 그녀들이 출세하는 길은 오직 황제의 성은을 입는 것이다. 3,000의 기라성 같은 미녀 라이벌들 가운데서 어떻게 황제의 눈에 띄어서 하루 밤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황제의 혼을 사로잡아서 비빈의 자리에 앉아 볼 수 있을까? 그녀들은 궁리에 궁리를 했다. 그러나 황제라는 님에게 가기 전에 그녀들은 말이라는 말 못하는 동물에게 먼저 간택되어야 하는 것이니…
비빈의 길은 과연 멀고도 험하도다. 그러니 그 후궁들은 말이 자기 처소의 물통의 물을 마시도록 하기 위하여 동원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 내려오는 전설 중의 하나는 물통에다 자신의 오줌을 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단내를 맡은 말이 그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해서 간택된 후궁이 갖가지 약초 달인 물로 목욕하고 단장을 마치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을 내시들이 비단포로 둘둘 말아서 황제의 침상 아래 발치에 내려놓는다. 그러면 여인은 자신의 나신을 감싼 시트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그런 장면을 내려다보다가 필이 꼽히면 황제는 드디어 발동을 걸고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침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발치에서 밤을 샌다. 아, 이 안타까운 모습이여. 황제가 발동이 걸린 시각을 잰 침실 밖의 내관들은 정확하게 두 시간 후에 신부를 끌어내린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어도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하나가 된 그 둘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밤의 자금성의 불문율이라고 하니 이 또한 믿거나 말거나이다.
모름지기 모든 위대한 영웅의 배후에는 두 위대한 여인이 있는데 하나는 어머니요 또 하나는 아내이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그의 첫 사랑 여자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다. 영웅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은 성적인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구약성경의 성군 다윗도 여러 여인을 거느렸고 그 아들 솔로몬도 천여명의 처와 첩을 거느렸다. 그러나 솔로몬이 실패한 군주로 기록에 남는 것은 그가 취한 무수한 이방 여인들의 입김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징기스칸도 이 방면에서 예외는 아니다. 내가 몽골에서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몽골의 남정네들의 정력은 발군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양고기와 말타기이다. 동의보감에는 양고기가 몸을 덥혀준다고 한단다. 이 양고기를 장기간 먹다보면 몸은 더워지고 원기는 강해진다. 몽골여인과 결혼하여 사는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양고기를 된장에 삶아서 6개월만 먹으면 확실히 효력이 있단다. 동시에 말을 타는 것은 엄청난 운동이다. 그 운동이 또한 몸을 자극하여 젊음을 유지하게 한다. 징기스칸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나중에 정실부인이 되었고 전장에 출정
할 때마다 동반했고 그녀의 지혜로운 내조를 받음으로 백전백승의 용맹을 떨치며 승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한 여인이었지만 그 사랑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인생에게나 시련은 있다. 하지만 그 시련이 모든 인생을 파탄으로 몰아가지는 못한다. 인간은 자신을 흔들어대는 시련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지혜로운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그 시련을 정면 돌파하고, 어떤 사람은 좌초되기도 한다. 청년 징기스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몽골 고원에 버려졌던 ‘애비없는 소년’ 징기스칸은 주어진 시련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징기스칸은 아홉 살 때 옹기라트 부족장의 집에서 데릴사위로 산다. 옹기라트 부족장의 딸 버르테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당시 풍습에 따라 처가살이를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독살 당했다는 비보를 듣게 집으로 달려온다. 몇 년 후 버르테를 데리고 온 징기스칸이 가족들과 함께 케룰렌강 상류 ‘물안개 피는 언덕’ 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희뿌연 안개가 피어오르는
고요한 새벽에 300 명의 메르키트 부족 전사들이 그곳을 습격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징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징기스칸의 어머니 허엘룬을 약탈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테무진의 아내 버르테를 납치해 간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테무진은 너무나 슬펐다.
그러나 자신 앞에 밀어닥친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피납 사건을 기상천외한 반전의 기회로 삼는다. 미래는 비관론자가 아니라 낙관론자가 여는 것이다. 낙관론자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비관론자는 책임 소재를 가리게 돼 있다. 당시 몽골 최고의 실력자는 케레이트 부족의 옹칸이었다. 그는 징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와 의형제였다. 징기스칸은 옹칸을 설득하고, 자신의 의형제였던 자모카의 군대까지 끌어들여 메르키트 공략에 나섰다. 징기스칸의 이같은 ‘아내 구하기 전쟁’에 대해 [몽골비사]는 이렇게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몽골비사]는 몽골 유목민들의 역사를 알리는 최고(最古)의 기록이다. 한밤의 기습에 메르키트 백성들은 허둥대며 셀렝게강을 따라 급하게 도망쳤다. 테무진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버르테! 버르테!”를 절규하며 외쳐댔다. 사랑하는 아내를 애타게 찾는 것이다. 바로 그때 도망치는 한 무리의 백성들 가운데 그 소리를 듣고 우차(牛車)에서 뛰어내리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자기를 부르는 곳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밤하늘에는 둥근 달이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버르테!” 말없이 흐르는 격정의 눈물 속에 둘은 서로를 맹렬히 끌어안았다.
2년 만에 아내를 구출한 징기스칸, 그러나 아내 버르테의 뱃속에는 적장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버르테는 남편과 재회한 후 곧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모두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주저하지 않고 이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였다. 그는 아이에게 “우리 몽골인에게 손님처럼 다가온 아이”라 하여 ‘조치’(손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적의 딸을 ‘며느리’로 삼는 것과 적의 아들을 ‘아들’로 삼는 것은 유목민에게 있어서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훗날 징기스칸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됐을 때,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 장남 조치와 차남 차가다이가 싸움을 벌였다.
둘은 징기스칸 앞에서 몸싸움까지 벌였다. 그때 몽골의 샤먼이자 가족의 보호자 격인 쿠쿠추가 나서 두 사람의 어머니인 버르테를 변호했다. [몽골비사]는 이렇게 전한다. ‘그대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별이 있는 하늘은 돌고 있었다. 여러 나라가 싸우고 있었다....중략....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 것이 아니다. 서로 죽일 때 그리 되었다. 그대들의 어머니는 함께 고생하며 그대들을 기
를 때 음식을 그대들에게 주고 당신의 목구멍을 좁혀 당신의 모든 것을 주고 주린 채 다녔다. 그대들의 빗장뼈를 당겨 남자답게 누가 만들었는가? 그대들의 목을 잡아 늘려 사람답게 누가 만들었는가? 이제 그대들이 잘되기를 보겠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가?’
고통과 희생의 나날을 보낸 어머니의 삶을 듣고서 두 아들은 싸움을 멈춘다.
이 싸움을 목격한 징기스칸은 조치에게 새로운 땅을 개척할 것을 명한다. 기회를 얻은 조치는 러시아와 헝가리 초원을 향해 길을 떠난다. 조치와 그의 아들 바투칸이 건설한 새로운 제국이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킵차크칸국였다. 킵차크칸국은 일칸국, 차가다이칸국, 어거데이칸국과 함께 몽골 제국의 4대 칸국 중 하나이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시련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은 징기스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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