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5번 프리웨이를 6시간 운전하여 샌프란시스코의 친구 집에 간다. 친구는 이민 와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전야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15년 정성껏 파티를 준비해 왔다.
친구 덕분에 오랜시간의 운전 동안 사방이 탁 트인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지나며 수많은 생각들이 펼쳐지는 멋진 공간여행을 즐겨왔다.
운전하여 멀리 가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나의 시선에 펼쳐지는 캘리포니아의 풍경은 아침 햇살이 비칠 때나 정오, 석양과 저녁, 어느 시간에도 그토록 멋진 장관을 전개해, 달리는 속도 속에 매순간 달라지는 구름과 산의 모양과 색조, 미묘한 시각적 요소들이 시선에 즐거운 데 오랜 운전이 지루하기는커녕 몸과 마음이 다 씻겨 지고 시원해지는 좋은 시간을 보낸다.
간간이 쏟아지는 겨울비 속에 벌써 초록빛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과수원 나무들의 적갈색과 연두 빛의 조화가 놀랍기도 하고 같은 갈색 빛의 땅인데도 어찌나 다양한 갈색 빛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지 완전히 몰입하여 몇 시간 내내 풍경을 즐긴다. 그 풍경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바라볼 때에 캘리포니아의 풍경만이 지닌 독특한 색조와 공간의 느낌이 어떻게 그림에서 드러날 수 있나를 상상하기도 한다.
북 캘리포니아의 형상파(Bay Area Figurative) 중의 하나인 리처드 디벤콘은 버클리 시리즈를 그린 후 샌타모니카에 살며 오션팍 시리즈를 그렸는데, 그의 색조와 색감, 공간감각은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오가는 프리웨이 위에 펼쳐지는 무한공간과 길, 선, 점, 나무들의 시각적 요소, 그 공간을 바라보는 화가의 심상을 추상화로 압축해 멋진 그림들을 이뤄냈다.
마침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전이 열리고 있어 그와 같은 시대에 작업한 데이빗 팍과 엘머 비숍의 ‘형상이 있는’ 멋진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뉴욕에서는 잭슨 폴락, 로스코 등의 인간이나 사물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 추상표현주위가 풍미하던 때라 사람, 풍경을 그린 북 캘리포니아 베이지역의 형상파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사조를 형성했다.
한 장의 그림 속에 내재된 한 인간의 역사, 회화의 역사, 한 장의 그림이 창조되는 매 순간 화가의 손끝의 힘과 떨림, 그 영혼이 전해지는 필치의 정신성을 느끼며 그림의 아름다움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오션팍 시리즈 #54<사진·1972년 작>를 특히 좋아하는 데 이 그림 앞에 설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
캘리포니아에서만 느낄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빛과 색조, 선의 전개가 화가의 정신성의 극한점과 만나 무척 아름답다. 그 열린 세계, 그 아름다운 색조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가운데에 숭고한 은총으로 우리와 함께 있다.
장엄하고 부드럽게 펼쳐지는, 사방이 툭 트인 풍경을 지나며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삶 중에 무엇을 깨닫고 이해하면 진정한 삶,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늘 그렇게 생각이 깊은 나의 두뇌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시선과 가슴의 전 존재로 살아 있는 것,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나와 일치한다는 점, 내가 생각하는 대상이 나와 일치한다는 점,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며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매 순간 깨달으며 확확 비워 버리고 가득 채우며 또 비워 버리는 불이(不二)의 삶을 사는 것이 삶다운 삶의 실체를 살아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하늘과 비와 바람과 구름이 전해준다.
대기, 허공, 공기를 바라보기를 즐겨하는데 저 투명하고 맑고 무한하고 열려있고 변화무쌍한, 비워 있으며 모든 것을 채우며 또 지나가 버리는, 무(無)이며 또한 모든 것인 허공을 바라보며 불이(不二)만 확연히 깨달아 살아가면 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나와 너, 나와 일체의 경계가 없다는 뜻일 텐데,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불이(不二)를 깨닫고 있으면… 새해에는 더욱 확연히 ‘그러하게’ 매순간을 살아봐야겠다.
박혜숙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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