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나만의 궁전을 가지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하게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집은 너무도 쓸쓸하게 느껴졌고 엄마가 없으면 짖꿎은 장난으로 나를 괴롭히는 오빠들이 벅차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기도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적막감도 오빠들의 실랑이 속에서 지지 않으려는 안달감도 나의 방에 들어서면 어느덧 사라지고 나는 마치 디즈니랜드에 있는 환상의 세계와 같이 꿈으로 가득한 나만의 세계가 열리곤 했다. 내 방안에는 이 세상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고 그 무엇보다도 고요함과 상상의 세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과 책, 연필과 크레파스, 색종이, 가위, 풀, 편지지와 우표 등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손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훌륭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으며 난 그들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슈바이처를 읽을 땐 의사가 되는 꿈을 꾸었고 유관순을 읽을 때는 애국심으로 가슴이 뛰었었다. 매일 저녁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실제로 전 세계에 있는 각국의 아이들을 한 명씩 모두 사귀어 보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었다. 그래서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7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펜팔클럽을 찾아가 여러 나라의 친구의 주소를 소중하게 얻어왔다.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까지 무려 5~6년 동안 매일저녁 난 영어로 편지를 쓰며 딴 세상에 사는 친구들과 편지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누구보다도 영어를 잘했다. 영어시험을 잘 본 것이 아니라 영어선생님도 놀라게 할 정도의 어려운 단어들을 척척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특수학교에 교사로 취직한 첫해부터 난 그 기관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안내를 담당하게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적십자사의 추천으로 한국 특수교육을 대표해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세계장애인 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기에 가서 다른 80여개 국가를 대표해 온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한 노르웨이 분은 시의원으로 시청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을 보여주기도 했고 노르웨이에 겨울이 오면 아프리카로 가서 농사법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책에서만 보던 위인들이 주변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로의 경험을 했다. 어려서 작은 방에서 꿈꾸던 일들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도 신이 나고 신기했다.
난 회의가 끝나고 30일 정도 더 유럽에 머물며 회의 중에 만났던 유럽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오스트리아 친구도 찾아가 그 집에서 자며 알프스의 식당에서 저녁도 먹었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가서 특수교육 기관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 후에도 나는 한국을 대표해서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고 세계 여러 나라의 특수교육 현황과 장애인 실태에 대해서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난 늘 집에서 혼자였기에 꿈을 이루는 것이 나만이 흥분되는 일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 친구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꿈이 얼마나 고귀한 꿈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난 꿈을 주는 교육을 하도록 교사양성 과정에 강조를 하고 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그들의 꿈인지 생각하게 하고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꿈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교사의 소임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스스로 가슴으로부터 느끼는 꿈이 있을 때 동기유발이 되고 꿈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닐 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가 있다.
어렸을 때 황당무계한 내용의 동화책을 읽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게 하고 평생 쫓을 꿈을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올해를 마무리 하며 아이들과 새해에 소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때 물질적이고 며칠만에 잊어버릴 근시안적인 대화보다는 평생 품을 수 있는 꿈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나도 새해부터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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