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엠’ 처럼 감상적인 오페라를 연말에 듣는 것은 다소 궁상맞지만 그 무대(1막)가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내용을 배제하고 듣는다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작품도 아니다. 오히려 ‘그대의 찬손’, ‘내 이름은 미미’ 같은 아리아들은 매우 로맨틱한 선율을 과시하고 있어 (크리스마스)캐롤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오싹한 겨울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푸치니의 작품은 음악은 좋지만 왜 그처럼 가슴 아픈 이야기들만 다루고 있는지 ? ‘라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등 3대 작품 중에서 한 작품 만이라도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라보엠’은 푸치니의 출세 작품이었는데 초연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1896년에 발표된 ‘라보엠’은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당시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특히 ‘그대의 찬손’과 ‘내 이름은 미미’같은 노래들은 당시로서는 다소 천박한 대중가요처럼 비쳐졌던 것 같다. 주제가 감상적(사랑)이어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이상의 금빛 날개 만을 추구했던 당시의 고전주의자들에게는 너무 노골적인 작품으로 비쳐졌던 것 같다. 그러나 혹평을 받은 이 오페라는 비평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곧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널리 공연되는, 오페라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노래가 워낙 아름다운 데다가 미미와 로돌포의 이야기가 바로 너와 내가 겪을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의 램프를 하나씩 갖고 싶어한다. 꺼내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추억의 마술 램프같은 것 말이다. 특히 가슴 아픈 미미(오페라 라보엠 속)의 이야기는 뿌연 램프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고호의 그림이 연상되는, 가난한 너와 나의 이야기, 그저 내용만 적어도 공감을 주곤한다.
프랑스의 앙리 뮈르제라는 작가의 소설을 내용으로 삼고 있는 ‘라보엠’은 여주인공 미미를 중심으로 시인 로돌포 그리고 주위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보헤미안 생활을 하는 가난한 빈털털이들로서 특히 처녀 미미는 폐병에 걸린 가련한 여인이었다. 푸치니는 가련한 미미의 모습에 특히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그대의 찬손’이라는 아리아를 통해 미미의 작은 손을 미화시키고 있다. 미미는 하루하루 수를 놓고 살아가는 가난한 여인이지만 손만은 작고도 여신처럼 희었다. 로돌포의 손에 잡힌 한 마리의 참새? 그 작고도 하얀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사 만 적어도 노래의 아름다움이 표현되고도 남는다.
?How cold your hand is!/Let me warm it. It’s useless searching in the dark? 그러나 곧 달이 떠오를 테니 다행입니다? 나는 시인입니다. 쓰는 것이 일인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 가운데 기쁨이 있고 운치가 있고,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나는 꿈 속에서 늘 백만장자를 꿈꿉니다. 아름다운 성, 금괴에 가득찬 보석들? 그런데 당신이 들어와 내 꿈이 깼군요. 그 빛나는 두 눈이? 그러나 좋습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니까요. 자, 이제 당신에 대해 말씀해 주실까요-
이 때 로돌포에게 화답하는 노래가 그 유명한 ‘내이름은 미미’라는 노래이다.
‘라보엠’을 작곡할 당시의 푸치니의 현실은 매우 절박했다고 한다. 오페라 ‘라보엠’ 처럼 친구들과 보헤미안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갔는 데 그들이 살던 여관의 이름도‘클럽 라보엠’이었다고 한다. 라보엠의 ‘보엠’이란 풍습에 구애없이 살아가는 보헤미안 기질이란 뜻으로 미미 역시 보헤미안 여자로서 맘에 드는 짝을 만나면 곧바로 사랑을 나누다가 부자를 만나면 미련없이 떠나가는 기질의 여자였다. 당시 푸치니가 ‘라보엠’같은 사랑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의 뼈저린 체험이 ‘라보엠’이란 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펼쳐지는 미미와 로돌포의 이야기는 노래도 아름답지만 그 사실적인 내용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찡한 리얼리티를 안겨주곤 하는 데 하일라이트는 역시 ‘그대의 찬 손’과 ‘내이름은 미미’ 등이 불려지는 순간이다.
-내이름은 미미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본래 이름은 루치아라고 합니다. 내 이야기는 길지 않습니다. 나는 집안에서 수를 놓고 살아갑니다. 나도 다락방에 살고 있지만 봄 볕은 내 방에 제일 먼저 찾아 옵니다. 아름다운 장미와 흰 백합을 수 놓을 때는 기쁘지만 그것들은 죽은 꽃이어서 향기가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슬픔을 느낍니다-
피지 못하고 곧 져버릴 ? 미미의 적적한 마음이 그려진 이 아리아(Si mi chiamano Mimi)는 ‘그대의 찬손’과 곧이어 나오는 이중창(오 귀여운 처녀)과 함께 ‘라보엠’의 1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청춘의 그리움이 묻어난다고나할까, 미미의 노래는 다소곳하지만 솔로의 비장함이 깃들어 있다. 인생이란 그저 만나고 헤어지는 것? 가슴을 비수처럼 도려내고, 아름다움의 극한으로 돌려주는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는 아니지만, 그저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여성적인 아름다움, 미미의 노래는 어딘가 운명적이어서 서글프다.
아리아를 부른 뒤 미미와 로돌포는 곧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은 사랑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게 된다. 그들은 하루는 웃고 하루는 싸우며 비참한 생활을 보내게 되고, 그나마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아름답게 결말 지어 주는 것은 미미의 죽음이다.
-꽃이 필 때 이별하다니, 겨울이 계속 되었으면 좋았을 걸?- 둘은 슬픈 아리아를 부르며 헤어지나 미미가 다시 로돌포 앞에 나탔났을 때는 이미 죽음을 앞둔 상태였다.
-이제는 손이 따뜻해요?- 미미는 첫 순간을 회상하며 숨을 거두고 로돌포는 미미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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