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보 국토 종단기 <35·끝> 드디어 통일전망대 도착
따뜻하게 대접해준 얼굴들 생각나고
종단 완료 약속 지킬 수 있어 홀가분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화두 떠올라
일찍 일어났다. 날씨가 맑다. 국토종단 마지막 날이다. 바닷바람을 쐬며 거진항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요즈음 거진에서는 명태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수온이 올라간 때문인지 러시아 인근 해역까지 올라가야 명태가 나오고, 대신에 도루묵, 양미리 등이 잡힌다고 했다. 기온의 변화가 물고기의 생태에, 어부들의 작업에, 결국 소비자의 식생활까지 영향을 미친다.
김창천 선생이 집에 가서 아침을 먹자며 거진까지 올라왔다. 아주머니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걸어오면서 만나게 된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배려해 주신 덕택에 여기까지 외롭지 않게 걸어왔는데, 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따뜻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발자국’이란 시가 생각난다. “한 젊은이가 꿈속에서 신과 함께 해변을 거닐었다. 그의 평생 동안 모래 위에는 항상 발자국이 두 개였다. 하나는 그의 것, 또 하나는 신의 것. 그런데 그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발자국이 한 개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에게 따져 물었다. 왜 당신은 내가 가장 슬플 때 저를 떠나셨습니까. 신이 대답했다. ‘애야, 나는 그 때 너를 업고 걸었느니라’”
첫 숟갈을 뜨는데 갑자기 이 시가 떠올라 가슴이 울컥했다.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내가 가는 길을 인도하고 지친 등을 토닥거려 주신 분,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며 먼지를 탈탈 털어주셨던 분. 그 분을 나는 또 잠시 잊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김 선생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도착했던 신고소에서 전망대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한다. 먼 길을 걸어왔는데 기왕이면 전망대까지 걸어가 종단을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이 없는지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공식적으로는 어렵단다.
비공식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누군가를 통해 특별한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규칙을 지켜 차를 타고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김 선생 부부와 함께 교회를 갔다. ‘가진 교회’라는 이름도 독특하지만 ‘됩니다. 합시다’라는 구호도 재미있다. 이번 여정을 보살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예배를 마치고 김 선생과 함께 출입신고소에 도착. 신고소에서 ‘민통선 출입신고필’ 도장을 받았다. 절차를 끝내고 기다리는데 연합뉴스와 강원일보 기자가 도착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강원도민일보 기자도 왔다. 곧이어 서울에서 이상엽씨가 친구 두 명과 같이 합류했다. 새벽에 서울을 출발했다고 한다. 모두 차를 타고 전망대로 향한다.
배봉리를 지나니 명파리다. 대한민국 북쪽 마지막 마을이다. ‘참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푯말이 서있다. 검문소 앞에 다다랐다. 검문이 끝나고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을 따라 달린다. 여기서 전망대까지 12킬로가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농사일을 하고 있다. 당국으로부터 출입증을 받아 드나들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이곳 땅도 개인 소유가 허용된다고 했다.
통일전망대 도착. 주차장이 만원이다. 휴일인 때문인지 관광객이 많다. 전망대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한 달간의 여정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국토종단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고라도 나면 어떠냐며 걱정하고 말리던 분들이 생각난다. 길을 걸어오면서 만났던 따뜻한 얼굴들도 떠오른다. 아찔하게 위험했던 몇 번의 경우도 기억난다.
꼭 종단을 완료해서 힘들고 어려운 분들께 희망을 드리겠다던 약속을 지키게 되어 홀가분하다.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걷다보니 목적지에 이르게 되었다. 전망대 벽에 낙서가 몇 개 보인다. 베를린 분단의 벽에 누군가 한글로 써 놓았다는 ‘우리도 하나가 되리라’란 글이 떠오른다. 땅 끝 마을에서 배낭에 넣어온 흙 한 줌을 꺼내 전망대 앞 소나무에 뿌려주었다. 전망대 계단에서 이상엽 선생이 만들어온 환영 배너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통일전망대에 섰다. 금강산이 멀리 보인다. 금 하나 그어 남쪽과 북쪽을 갈라 놓았다. 해금강 쪽으로 차도와 기차 길이 나란히 뻗어 있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왕래하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적막하다.
저 길을 따라 한반도 북쪽 끝까지 갈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기자가 물었다. “한 달간 걸어와 전망대에 선 느낌이 어떠십니까?” “굉장히 감동적인 순간을 상상했는데 그냥 덤덤하네요.” 그랬다. 담담했다. ‘길에서 길을 묻다’는 화두가 다시 떠오른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분단의 아픔과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곳이다.
한 달간의 여정을 끝내는 순간 지인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 나와 국토종단의 성공을 축하했다.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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