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그리려다 간신히 고양이를 그리고 있는데 그나마 완성될 수나 있을지 아직 확실치도 못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최우선 과제로 공들여온 ‘역사적 헬스케어 개혁’의 현주소가 그렇다.
민주당이 깃발처럼 내걸었던 퍼블릭 옵션이 제외되었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메디케어 확대 적용도 잘려나갔으며 무보험자 구제 규모도 줄었고 값싼 처방약 수입허용도 무산되었다. 원내의 중도파와 보수파, 원외의 업계와 노조…여기저기 비위 맞추느라 개혁 맞아? 야유당할 정도로 빈약해 졌는데도 연방상원의 헬스케어 개혁안은 아직 통과를 장담할 상황이 못 된다.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몇 주 주문처럼 외워 온 “크리스마스 전까지 통과”가 이루어지려면 늦어도 내일, 18일부터는 심의종료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절차가 적어도 5~6일은 걸리니까 그래야 턱걸이로라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상원 본회의 표결을 실시할 수 있다. 본회의에선 과반수 찬성만으로 통과가 가능하니 심의종료 표결만 무사히 마치면 ‘드디어’ 성공이다! 그런데 리드는 심의종결에 필요한 ‘60표’를 16일 오후 현재, 확보하지 못했다.
민주당 개혁안 일정은 이렇다 : 상원안이 다음 주 통과되면 연말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1월초 상하원 절충안을 만들어 다시 양원 본회의에서 각각 통과시킨 후 1월말 오바마가 국정연설 전에 서명할 수 있도록 한다. 민주당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역사적 과업의 완수’를 선언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공화당의 소모적 방해에도 불구, ‘헬스케어 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완성시킨 ‘유능한 여당’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일자리와 교육 등 주요이슈를 선점하며 보다 자신있게 리드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희망찬 새해 정치일정의 터 닦기를 앞으로 한 주내에 마쳐야하는 민주당은 급하다. 숨이 턱에 차지만 지난주까지만 해도 일정을 맞출 수 있을 듯싶었다. 민주당내 진보와 중도파 대표 10인위의 막후협상을 통해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협상에서 퍼블릭 옵션이 희생당했고 55세 이상 무보험자의 메디케어 확대 적용이 대안으로 포함되었다. 이만하면 58명 민주당과 2명 무소속, 60표의 지지는 확보되었다고 리드를 비롯한 지도부가 일단 한 숨을 돌리려던 지난 주말 예상 못한 돌발사태가 터졌다.
무소속 조셉 리버맨 의원의 폭탄선언-”메디케어 확대적용이 포함되면 공화당 필리버스터에 합세하겠다!” 민주당원들에게 리버맨은 ‘눈엣 가시’같은 존재다. 부시의 이라크전을 강력 지지했다가 2006년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자 본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투표성향은 민주당과 보조 맞춘 진보적이지만 2008년 대선때 매케인을 열렬하게 지지한 나머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찬조연설까지 한 그를 진보진영은 ‘반역자’로 흘겨본다. 석달전 자신이 지지를 공언했던 메디케어 확대적용을 왜 돌연 반대하며 개혁안을 볼모삼아 위협하느냐는 질책이 쇄도하고, 보험업계에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온 ‘1백만 달러의 사나이’’에트나(Aetna) 상원의원’이란 비아냥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제부터의 개혁안 입법과정은 법안 내용이 아닌 숫자게임인 것을. 상원 지도부는 메디케어 확대조항을 포기하기로 했다. 리버맨에게 항복하느냐고 진보파들이 반발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60표에서 단 1표만 모자라도 개혁안 자체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통과위한 민주당의 옵션은 3가지다. 리버맨의 요구를 들어주든지, 공화당 중도파를 포섭하든지, 아니면 ‘조정’절차를 동원하여 재정관련 조항만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 중도파들은 리버맨 보다 더욱 완강하고, 복잡하면서 효과가 제한적인 조정절차로 가는 편법은 지도부가 처음부터 거부해왔다. 설사 ‘진보파 혼내주기’가 그의 속셈이라 해도 리버맨을 달래는 것이 그중 나은 선택인 셈이다.
아직도 장애는 사방에 널려있다. 천문학적 비용과 낙태규제 제한에 대한 중도파의 불만뿐이 아니다. 개혁안의 동력이 되어온 진보파들의 실망과 분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혁안을 죽일 순 없다. 약해도 살려야 한다. 위대한 법안은 못 되지만 좋은 법안이다. 좋은 법안은 앞으로 위대한 법안으로 개선될 수 있는 좋은 출발이다”라면서 이탈은 안 된다고 달래고 있다.
민주당이 급한 만큼 공화당도 필사적이다. 될수록 오래오래, 중간선거가 코앞인 내년 여름까지 개혁안을 질질 끌고 가려는 지연 전략이다. 원내에선 공화당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 작전에 돌입하고 원외에선 보수 시위대들이 ‘법안을 죽여라’, 피켓을 흔들어 댄다.
오바마가 민주당과 무소속 상원의원 60명을 초청한 15일 백악관 모임의 한 장면을 온라인 ‘더 힐’이 이렇게 전했다. 물의를 일으킨 것이 미안하기도 한 리버맨이 말을 꺼냈다. “내게도 전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고” 진보파 쉐롯 브라운이 받아쳤다. “조, 알겠지만 우린에겐 정말 재미없는 일이요!” 어색해지려는 순간 오바마가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 모두가 재미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개혁안을 통과시킵시다!”
그럴 수 있을까? 앞으로 1주일 후면 판가름이 날 것이다. 사실 퍼블릭 옵션이 빠졌다해도 3,000만명의 무보험자가 보험을 갖게되고, 중병에 걸려도 보험에서 쫓겨날 걱정 없으며, 연수입 8만8,200 달러미만의 가정엔 보험료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개혁안의 가치는 충분하다. 잘생긴 고양이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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