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또 다시 ‘역시나’로 나타났다. 스티븐 보스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대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6자회담 재개라는 대화 목적 자체를 안개 속에 머물게 하고 있다. 핵개발을 단념하겠다는 어떤 시그널도 포착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허한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렸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대세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우선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앞으로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해빙기라고할까. 미국과 북한이 그런 시점에 와있다는 평가가 주류같이 보인다.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북한 권부의 중심부는 여전히 어름 짱같이 차갑다. 영구적인 동토(凍土)가 북한이라는 정치집단의 심장부다. 그래서 던져지는 의문부호다.
북한 인권결의안이 올해에도 유엔에서 채택됐다. 지난 2005년 이후 다섯 번째 채택된 북한 인권 결의안이다.
기본권이 무시된다. 탈북자가 강제 송환된다.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종교의 자유도 없다. 기독교도의 경우 그 처벌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북한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다. 거기다가 외국인들을 마구 납치한다.
그 시정을 유엔인권 결의안은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막무가내다. 서방의 정치적 음모라는 비난을 퍼 부으면서. 날로 악화만 되어가고 있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유엔은 연 5년째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이 철저한 인권부재의 상황은 바로 북한 권력의 속성을 말해준다. 따듯한 인간의 체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파충류의 섬뜩한 차디찬 기운만 감촉되는 게 북한 권력의 심장부다.
‘또 그 이야기인가’-. 스웨덴에서 요즘 일고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북한인들이 금제품을 밀수하다가 적발됐다. 그 밀수범들은 북한 외교관들이다. 그에 대한 반응이다.
한 번이 아니다. 두 번도 아니다. 정확히 33년 전, 그러니까 1976년 스칸디나비아 3국이 북한과 수교를 하자마자 터진 뉴스가 북한 외교관들의 밀수사건이다. 그 후 연중행사처럼 같은 일이 반복돼 일어났다.
가짜 담배를 팔다 적발됐다. 마약에, 위조 달러를 팔다가 붙잡혔다. 그럴 때마다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운다. 전혀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이. 그래서 이 33년째 이어지는 북한 외교관들의 밀수사건 적발에 스웨덴 국민들은 피곤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명색이 한 국가의 외교관들이 30년이상 밀수라는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나. 도덕성 부재에, 양심마비는 북한권력이 지난 30년간 보여 온 증세다. 그 증세에 전혀 차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과연 달라진 게 있기는 한가. 햇볕정책 10년과 관련해 나온 질문이다. 변화를 기대하고 열심히 퍼주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양보를 한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가끔 가다가 은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양 이산가족 상봉 TV쇼나 연출한 게 고작이다. 그것도 돈을 받고.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북한 TV방송의 맥주광고 소동이다.
북한에서 맥주광고가 시작됐다. 북한도 마침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일부의 기대가 있었다. 그 광고가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됐다. 김정일이 노해 그렇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 커머셜 방영을 중국식 시장경제 개혁의 전주곡으로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는 거다.
왜 그토록 분노했나. 중국식 개혁개방은 바로 북한체제 붕괴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햇볕 10년’에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스탈린식 통제경제로의 회귀가 그것이다.
시장 세력을 철저히 말소하라. 자생적인 시장경제에 칼을 빼든 것이다. 화폐개혁이 그 극단조치다. 장마당 확대는 체제유지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전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장마당을 통해 형성된 북한의 중산층을 철저히 분쇄하고 나선 것이다.
종합하면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외부세계를 오직 약탈대상으로 본다. 자국민에게는 철저한 굴종만 강요한다. 외부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다. 아니, 그 손을 때로는 물고 뜯는다. 그런 가운데 수령 절대주의체제 유지에만 혈안이다. 3대 세습인가 뭔가를 강행하면서.
이런 북한의 권력 중추로부터 핵문제에 대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비유하자면 인센티브를 줄 테니까 표범에게 얼룩무니를 없애라고 하는 것과 똑 같은 기대다.” 영국의 북한문제 전문가 에이디언 포스터-카터의 충고다.
역사의 되풀이는 비극이다. 그 두 번째 되풀이는 소극(笑劇)이다. 공산주의의 비조 마르크스가 한 말이던가. 그 말이 새삼 새겨지는 요즈음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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