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말이 되었으니 나는 또 한동안 ‘와인선물 감별사’ 노릇을 해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와인 선물을 받았는데 이거 좋은거에요?” “이 와인 비싼건가요?” “얼마나 좋은 와인이죠?” 이런 질문을 수시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꼭 연말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지만 선물의 트래픽이 많아지는 이때쯤 특별히 더 늘어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오기도 하고, 전화로 스펠링을 불러주기도 하고, 직접 와인 병을 들고 와 감별을 요청하기도 한다. 와인은 종류가 수천수만가지로 많은데다 똑같은 750ml 한병이 싸게는 2달러에서부터 최고급은 수천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과연 자기가 받은 것이 어떤 수준인지 궁금해 죽겠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쩌면 선물한 사람의 의도라고 보아도 좋은 것이, 와인이라는 품목 자체가 좀 있어 보이기 때문에 좀 싼걸 선물했대도 받는 사람이 일부러 알아보지 않는 한 가격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담에야(전문가라 해도 이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와인레이블을 다 꿰고 있는 사람은 없다) 또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거나 와인샵에 가서 물어보지 않는 한, 받는 사람이 얼마짜리인지를 알 수 없는 품목이 바로 와인이다. 그런데 받은 사람은 또 그걸 구태여 알아보려고 기를 쓰는 품목도 와인인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 와인이 ‘맛있느냐’고 묻지 않고, ‘얼마짜리’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걸 알아야만 이 와인이 얼마나 맛있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은 “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유는 이제껏 그렇게 감별해준 수많은 와인 중에서 30달러를 넘어가는 것은 한 병도 없었기 때문이다.(사실은 30달러 정도만 해도 상당히 맛있는 와인이다) 그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평범한 레이블의 10~20달러 정도의 와인이 주를 이루고, 심지어 ‘투벅척’으로 불리는 1.99달러짜리 찰스 쇼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또 여행길에 누가 사다줬다는 와인 같은 것은 현지에서만 판매되는 것일 확률이 높아서 감별이 안 되지만 그 역시 비싼 와인일리는 절대로 없다. 그렇게 큰돈을 주고 사서 비행기에 싣고 온 와인을 당신에게 선물했을 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경험에 의하여 알게 된 와인선물에 관한 진실을 밝히자면 ‘당신이 받은 와인은 비싼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음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한 것이다.
1. 와인을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비싼 와인을 사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한번 마셔버리면 그 뿐인 와인에 왜 비싼 돈을 지불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예산이 있다면 와인이 아닌 좀더 비싸 보이는 품목을 고른다.
2.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은 와인을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로 비싼 와인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쳤다고 좋은 와인을 선물하겠는가.
3. 만일 누군가 비싼 와인을 선물하였다면 그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알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받은 사람이 모를 수는 절대로 없다.
4. 언제나 예외와 특별한 경우가 있다. 와인애호가가 또 다른 와인애호가에게 선물할 때, 와인을 잘 모르지만 와인애호가에게 좋은 선물을 해야할 때, 돈이 너무 많아서 뭐든지 싼 것을 사는 일은 자존심 상하는 사람의 경우 등등.
덧붙여서 “집에 10년전에 누가 준 와인이 있는데 얼마나 좋은건지 궁금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얼마나 좋은지는 안 보고서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 나의 조언은 “다 버리세요”다.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싼 와인일 리가 거의 없고, 만일 좋은 와인이었다 해도 오랜 세월을 버티려면 보관을 잘 했어야 하는데 그 가치조차 모르는 사람이 잘 보관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궁금해 하는 선물 받은 와인의 가격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사는 와인의 가격과 같다고 보면 된다. 사람은 다 비슷해서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와인클래스를 할 때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10달러 선에서 맛있는 와인 좀 알려주세요”다. 자기가 편하게 마실 와인은 10달러 대에서 찾으면서 선물로 받은 와인은 그보다 훨씬 비싼 것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들이란 얘기다.
이번 연말에 와인을 선물 받았다? 괜한 기대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따서 가족 친지들과 함께 맛있게 드시기 바란다.
정숙희 /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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