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회의론의 기수인 비외른 롬보르는 젊은 시절 과격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열렬한 회원이었다. 덴마크의 통계학 교수로 환경보호에 앞장섰던 그는 환경론을 일축한 보수 경제학자의 주장에 분개하여 이를 반박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러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계속하면서 그가 다다른 결론은 자신의 평소 지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 지구온난화 학설에 회의적이 된 그가 2001년 펴낸 책이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회의적 환경주의자’다.
당시 지구온난화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그도 지금은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현상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원인의 상당부분이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개스 때문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하려는 온실개스 감축정책이다. 엄청나게 드는 경비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니 그 돈을 기아나 질병 퇴치에 사용하여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북극의 아기 곰만 살릴 겁니까? 인간 아기들은요?”라고 그는 반문한다.
온난화의 재앙을 막으려면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상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대책으로 석유연료 사용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개스 배출을 감축하자는 것이 국제사회의 기본합의다. 통계학자 롬보르의 방향은 다르다. 그 대책을 시행할 경우 2100년경 세계의 총생산고가 매년 40조 달러나 줄어드는데 비해 시행하지 않을 경우의 피해액은 3조 달러에 그친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그러므로 대책에 합의하려는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사람들이 우려한대로 ‘실패’로 끝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축복’이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번 주 초 개막하여 2주 동안 계속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출발부터 순조롭지가않다. 전 세계에서 2만명이 모여든 축제분위기속에 110개국 정상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화려한 뉴스의 조명을 받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상반된 각국의 갈등이 개막 첫날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코펜하겐 회의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 책임은 누가 지느냐, 돈은 누가 내느냐. 첫째, 온실개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각 나라별로 얼마만큼씩 줄일 것인가. 둘째, 기후변화 대응에 드는 비용은 누가 얼마나 부담하며, 또 그 돈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
선진국과 개도국들이 누가 책임을 지느냐를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시작했고 누가 돈을 내느냐를 놓고 선진국과 신흥개도국들이, 누가 돈을 받느냐를 놓고 개도국과 빈국들이 눈치 보며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차피 코펜하겐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이 체결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협조 자세로 정치적 합의를 이루고 그 합의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에 협약체결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지구는 당분간 열을 식힐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시작 전에는 기후학자들의 이메일이 해킹당하면서 데이터 조작 논란을 부른 ‘기후변화 게이트’가 물의를 빚더니 시작 직후엔 ‘덴마크 문건’이 개도국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덴마크와 미국, 영국 등 극소수 국가끼리 비밀리에 작성했다는 기후대책 초안 합의문이 유출된 것이다. ‘모든 당사국이 2050년까지 온실개스 배출량을 50% 줄인다’ ‘지원금은 가장 가난한 국가에 우선적으로 배당하며 기금운영은 유엔 아닌 세계은행이 담당한다’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많은 초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덴마크는 진화에 나섰지만 개도국들의 반발은 강경하다. “지금까지 온실개스를 실컷 배출해온 선진국과 이제 막 배출을 시작한 개도국이 책임을 똑같이 지란 말인가? 개도국에 호의적인 유엔의 권한을 축소하고 개도국을 지원대상에서 밀어내려는 음모다!” 일부대표가 책상위로 뛰어올라가 고함을 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지구를 식히려는 코펜하겐 회의장은 열 받은 지구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다음주 각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폐막 무렵엔 공조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당사국들의 이 같은 대립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점점 식어가는 여론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미국내 여론은 특히 시들해졌다. 퓨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온난화를 믿는다가 2년전 71%에서 57%로, 원인이 인재라고 믿는다가 47%에서 36%로 뚝 떨어졌다. 히말라야의 빙산이 녹아내리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가 수몰된다 해도 그건 수십년 수백년 후의 위협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닌 이산화탄소를 공공의 적으로 삼는 것도 실감나지 않는데다 경고는 오래전부터 요란한데 국제적 대책협상은 영 지지부진하니, 이슈 자체에 대한 피로감도 쌓인 게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는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적, 이념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사회 우선과제다. 다시 뜨거워진 과학계 온난화 논쟁의 양쪽 주장 모두가 다 설득력이 있어 과학에 무지한 보통사람들은 어느 한 편에 서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버클리의 기후학자 론 코헨은 현재의 지구를 체온 100도가량의 미열 환자에 비유한다 : 원인도 밝혀졌고 방치하면 고열로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도 내려졌다.
그러나 원인제거는 엄두도 못 낸 채 발열 속도를 늦추자는 임시방편에 합의하려고 애쓰는 것이 코펜하겐 회의인 셈이다.
그는 코펜하겐 회의가 갖는 또 하나 의미 깊은 측면을 강조했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원인제거에 과감히 나설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여론의 관심을 재점화 시키는 동시에 각 개인에게 소비적인 생활패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배움의 계기가 되는 일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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