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국 문단 4개상 수상 화제 소설가 이혜영씨
이혜영 혹은 리사 리라는 이름은 몰라도 ‘서울대에서 감전사고로 아들을 잃은 여자’ 하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결혼 직후 남편을 사고로 잃었고, 목숨보다 더 귀하게 애지중지 키워온 외아들을 어학연수 보냈다가 잃은 후 거의 넋이 나갔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어쩌지 못해 치열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몸부림쳐 왔던 그녀를 한인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 이혜영씨가 마침내 ‘진짜 작가’로서 당당히 섰다. 이제는 더 이상 ‘폴 유빈 리의 어머니’가 아니라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소설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계속 써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봄 본보 문예공모의 생활수기 부문에서 ‘전반전 하프타임 후반전’으로 당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올해 4월 창조문학 제71회 신인상 소설부문에 단편 ‘아파트’가 당선되었고, 여름에는 문학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 ‘밀가의 아리아’가 당선됐으며, 같은 작품으로 9월에 2009년 크리스찬 문학 작가상 본상을 수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월간 신동아의 제45회 넌픽션 공모에서 ‘레퀴엠’이 당선된 것이다. 신동아의 권위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올 1년 동안 미주문단도 아닌 한국 문단에서 4개의 상을 수상했으니, 2009년은 ‘리사의 해’라고 해도 뭐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활약은 한국서도 화제가 되어 여러 일간지에 소개됐고, 신동아 시상식 참석차 방한했던 10월 말 때마침 ‘밀가의 아리아’가 출간되어 곳곳에서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아들 잃은 상처 치유하며 성장… 신동아 공모에 ‘레퀴엠’당선
내면의 성숙기였던 10년간의 쉼표… “치열하게 그림에 매달려”
“10년 동안 눌러놓았던 창작열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미주 한국일보를 통해 등단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생활수기가 나가고 나니까 LA에 우리 집 사건을 아는 분이 어찌나 많던지요. 수많은 분들이 ‘그 어려움을 어떻게 견뎠느냐’, ‘당신 때문에 살 힘이 난다’고 위로해 주신 덕분에 용기를 얻어 쓴 작품이 ‘레퀴엠’과 ‘밀가의 아리아’입니다”
이씨는 1992년 8월1일, 아들 사망소식에 혼절하고 난 후 정신 나간 여자처럼 방황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 이듬해인 93년 산문시집 ‘하늘로 치미는 파도’를 냈고 95년에는 자전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냈다. 연이어 서간문집 ‘바람이 전하는 그리움’과 일기문집 ‘수평선 저 너머에는’을 출간하는 등 그 몇 년 사이에 7권의 시집과 산문집, 소설을 집필하며 가슴의 상처를 지우려 애썼다.
“그때 썼던 책들은 유빈이 산소에 갈 때마다 ‘엄마 이렇게 살았어’하고 갖다 놓고 온 책들”이라고 회상하는 그녀는 “울면서 쏟아내고 또 쏟아내고, 글 쓰면서 살아내고, 글 쓰면서 치유 받았다”고 말했다.
이중 ‘나비야 청산가자’는 작고한 조병화 선생의 권유로 쓴 책이다. 산문시집을 읽고 난 조병화 선생이 “시도 좋고 수필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은 체험에서 우러난 소설이므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글은 소설로 나와 꼭 읽혀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유했다고 한다. 결국 머리말도 조병화 선생이 썼고, 이 책은 훗날 그녀가 LACC에서 공부할 때 영어로 조금씩 옮긴 것이 ‘부자소년’(The Rich Boy Stands There Always·2006년)이란 영문소설로 출판되고 LACC 교재로 채택돼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씨는 책 수익금은 모두 클레어몬트 대학과 LACC 대학에 설립해 놓은 폴 유빈 리 장학재단의 기금으로 보내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글을 쓰던 이씨가 어느 날 완전히 펜을 놓아버린 이유는 ‘죽은 아들 업고 이름 내려한다’는 누군가의 질시 섞인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도 아물지 않는 그녀의 상처를 더 깊이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 다음 10년은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그것도 대강 취미삼아 그린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정식으로 공부하며 그렸다. LACC에서 저널 아트 전공으로 졸업한 뒤 4년제 대학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AIU) 미술과로 옮겨 1년 만에 올A로 졸업했다. 그뿐 아니라 런던에서 연수하며 뮤지엄 아트와 사진을 공부했고, 지금은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중이다. “공부라면 10년 동안 싫도록 했다”는 그는 ‘밀가의 아리아’ 상하권 표지들도 직접 그렸다.
이번에 신동아에 당선된 ‘레퀴엠’은 17년 동안 용인에 묻혀 있던 아들의 유골을 지난 5월 화장해 그 잔해를 이곳으로 가져온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한국에 있는 무덤을 자주 돌보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그 아들의 유골을 수습해 한 줌 재로 만들어 나무상자에 담아온 어머니의 심정이 저리도록 차분하고 아름답게 묘사돼 있다. 유해상자가 담긴 백팩을 메고 아들과 데이트를 한다며 용인 에버랜드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상상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담담한 묘사 때문에 더욱 눈물이 솟구치는 부분이다. 그녀는 골분의 반은 지난 여름 아들이 즐겨 서핑하던 샌타모니카 바다로 떠나보냈고, 반은 곁에 둔 채 이제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고독의 나날을 견디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 있었기에 더 성숙해졌을까. 이혜영은 이제 진짜 작가로 돌아왔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작가. 매순간 아프던 고통이 지금은 이제 많이 잦아들었다.
한때 수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와인과 수면제로 세월을 보내며 밤마다 아침에 안 깨어나기를 기도했다는 그녀는 그 끔찍했던 어려움을 다 겪어내고 나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다는 걸 지금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바람으로 글을 쓰고 있다.
“사랑을 더 쓰고 싶어요. 사랑이 삶의 기본이니까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유빈이 때문에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유빈이 때문에 삽니다. 그 애가 끊임없이 힘과 사랑을 주니까요”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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