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황을 시찰하고 지난 주말 돌아온 연방하원의 민주당 중진 존 머서의원은 우려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거둘 수 있는 승리’가 무엇인지 조차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이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을 해줄 것으로 신뢰받는 사람 중 한명이 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장군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을 포함 남서 및 중앙아시아 20개국 주둔 미군을 총괄하는 중부사령관으로 현 아프간주둔 미군 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의 직속상관이며 그 자신 부시 당시 이라크 증파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는 반군진압작전의 성공여부는 군사적 작전과 비군사적 임무를 얼마나 균형있게 전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전투승리와 민심잡기를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당국 국민들의 일상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는 신뢰를 얻지 못하면 결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는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교훈삼아 아프간전의 방향을 건의했다.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와 탈레반을 구분해야한다. 알카에다를 뿌리뽑는 것은 가능하지만 탈레반 완전 소탕은 불가능하다. 탈레반 중 상당수는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에도 계속 남아서 살 국민들이다.
현재 탈레반의 70%는 생계형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아프간의 국민 1일 평균소득은 1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탈레반 전사가 되면 일당 10달러를 받는다. 지하드를 꿈꾸는 극단적 이슬람 이념주의자가 아닌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자원하는 이유다. 아프간 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이들을 설득하고 회유하여 경비원, 건설근로자 등으로 취업시키며 8천여명을 전향시켰다고 한다. 이들 같은 생계형 중도 탈레반에 대한 회유와 협상이 미군의 주요 작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추가파병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리한 현 전세를 역전시키며 강한 미국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영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잇단 침공을 끈질긴 저항으로 물리치며 오랜 전쟁 경험을 쌓은 아프간인들은 전세 판단이 빠르다. 자기들이 우세하다고 믿으면 결코 협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탈레반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전투에서 이겨야하는 이유는…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말한다.
이같은 현지 사령관들의 보고를 듣고난 후 지난 석달간 9번의 안보작전회의를 거듭하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숙고하고 또 숙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일 대국민연설을 통해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발표했다.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확전선언이었다. 이제 아프간은 더 이상 부시가 남겨준 과제가 아닌 ‘오바마의 전쟁’이 된 것이다.
반전의 기수로 힐러리와 매케인을 공박했던 그가 전쟁의 당위성과 필승의 전략을 정연한 논리로 풀어가며 대국민 설득에 나선 것이다. 승세의 탈레반을 압도할 3만명 추가파병과 18개월 후의 철군 개시라는 출구전략을 골자로 아프간 정부군에 지휘권 인계와 민간분야 지원 등을 약속하며 “왜 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설명한 35분의 스피치에서 그러나 그는 ‘승리’라는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 소탕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성공적 마무리’를 제시했을 뿐이다.
아프간지도자들에게 부패척결과 정국안정 책임을, 파키스탄 지도자들에게 반군진압의 적극동참을 강조한 그는 적개심과 불안과 공포를 느낄 아프간 국민들을 향해서도 말했다 : “우린 당신들의 나라를 점령하려는 게 아니다…이 나라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당신들에게 있다.”
오바마의 새 아프간 전략엔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탈레반의 저항과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 파키스탄의 발뺌 등 현지에서의 장애만이 아니다. 전쟁 당사국들에게 사안의 위급성을 강조하기위해 제시했다는 철군 일정엔 당장 ‘비현실적’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졌고, 증파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에선 ‘배신’이라는 비난이 들끓고, 철군일정 제시가 불만인 보수진영에선 ‘소심하다’고 혀를 찬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 떨어지는 여론의 지지다. 불황에 시달리는 요즘의 미 국민에겐 또 다시 긴 전쟁을 참아낼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다. 7년전 첫 반전 스피치에서 오바마는 이렇게 외쳤었다 : “난 모든 전쟁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멍청한 전쟁(dumb war)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젠 그가 자신의 아프간 전쟁은 왜 멍청한 전쟁이 아닌가를 국민에게 확신시켜주어야 한다.
아프간 현지에서 머서의원이 물었다. “증파후 가장 필요한 것이 뭡니까?” 맥크리스털 사령관이 대답했다. “시간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철군 시작을 약속한 2011년 7월은 금방이다. 그때가 되면 미군의 폭격으로 집을 잃고 지금 얼어붙은 텐트수용소에서 떨고있는 아프간 난민들은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지금 아프간에서 싸우고 있는 미군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귀환하여 2012년 오바마 재선에 한표를 던져줄 수 있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행운을 빌자.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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