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의 신앙을 받아 태어난 나는 한 손에 명심보감과 또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대소가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사각모를 쓴 대학생에게 시집을 갔었다.
가정형편은 두부공장을 경영하시는 시어머님의 도움으로 생활의 여유는 있었지만 시 도 때도 없이 목판을 들고 들락거리는 소매상인들과 한 모 두 모씩 사가는 동네사람들로 두부공장은 항상 북적거렸다. 특히 대목을 바라보는 명절 때가 되면 많은 종업원들이 수 백모의 두부 목판을 자전거에 싫고 배달하기에 바빠 즐거운 비명을 토해내곤 했었다. 그런대도 손이 딸려 가까운 이웃에서 급한 배달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나는 아침상을 보다 말고도 두부 목판을 머리에 이고 달려가곤 했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는 섣달 그믐 날이었다. 내속으로는 종업원들의 일손을 돕겠다고 만삭의 몸이라고 염려하시는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두부 목판을 머리에 이고 살을 어이는 눈보라와 얼어붙은 길을 다리다가 아차 하는 순간 빙판에 미끄러져 머리에 이고 있던 두부는 어름 길에 목화송이처럼 깔려 져 있었고 목판은 판자조각처럼 쪼개졌다.
그 여파로 2월 중순에 출산예정이었던 것이 일월 중순에 접어들자 진통이 오기 시작하였는데 급히 달려온 산파의 말처럼 밤새껏 생살이 찢겨지는 고통을 겪은 다음날 새벽에서야 탯줄을 목에 감고 얼굴은 파랗게 멍이 든 채 세상을 향하여 터트리는 첫 울음도 없이 태어났다. 그 때 시어른들께서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팔 삭 동이는 살아도 구 삭 동이는 살아도 병신이 된다? 고 들하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득한 절망에 휩싸였다.
나의 감각과 감정도 동시에 얼어붙는 압박을 느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산파가 아기를 거꾸로 쳐 들고 몇 차례 아기 등을 때렸다.그 때였다. ‘응 아’ 아기는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서야 시어머님께서 목소리가 힘찬 것을 보니 아마도 우리집안에 대통령 감이 나오려나 보다’ 라고 안도의 숨을 쉬시면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온 집안이 떠나 갈 듯 이 외치시며 눈시울을 붉게 적시셨다.
생각해보니 시아버님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신 후, 어머님께서 평생을 그 아들 하나만을 바라고 사신 외아들의 몸에서 첫 손자를 보셨으니 아마도 세상을 얻으신 기쁨이 하늘에 닿으신 듯 했다. 아가는 ‘구 삭 동이’ 이라는 불안을 잊게 하고 젓 가슴에 파묻혀 무럭무럭 잘 자라났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젖을 마다한 아기가 계속 잠만 자는 것이었다. 기억의 자리하고 있는 잠재된 의식 속에서 ‘구 삭 동이’는 사람 노릇을 못한다? 라고 수군거렸던 어른들의 말이 세차게 뇌리를 때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 보니 눈이 푹 꺼지고 몸은 축 늘어져 있고 열은 40도를 오르내렸다. 허겁지겁 아가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조치를 하여 달라고 수납창구에 의뢰하였더니 때 마침 왕진을 하던 의사가 발걸음을 멈추며 들쳐 업은 아가를 여기저기 검진을 하더니 의사는 ‘급성폐렴’ 이라고 하면서 ‘페니실린’을 구해 와야 아기를 살릴 수 있으니 빨리 페니실린을 구해오라고만 했다.
그때 만 해도 ‘페니실린’이란 이름이 익숙하지 않았고 널리 보급되지도 못한 때이어서 ‘페니실린’을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다행히 의사로 있었던 시누남편의 도움을 받아 아기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인지 나에게도 학질이라고 하는 달갑지 않은 병마가 찾아와 몇 달을 고생한 후에 두부공장을 정리하고 신길동으로 이사하고 24시간을 아기와 함께 하려고 마음을 다졌다.
그런데 어인 날 벼락인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느긋한 점심상을 대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를 뒤덮은 폭음과 하늘을 치솟는 검은 연기가 온 천지를 뒤 덮더니 북괴가 남침을 가했다는 민족의 비극이 일어났다. 6.25라고 하는 민족 상변! 삽시간에 머리에 봇짐을 인 피난민들의 행렬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은 이산가족들의 피를 토하는 절규와 통곡! 검은 날개의 비행기는 매일 같이 서울로 날아와 무자비하게 폭탄을 터트려 피 바다를 만들어댔다. 어찌 그때의 참혹함을 말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하게도 우리 가족은 용인 외가에서 한 여름을 지루한 피난사리로 지냈다.
그런지 약 3개월 후 북진을 하는 아군을 따라 다시 서울로 돌아와 파괴되었던 질서들이 잡혀가는 도중, 외가에 맡겨두었던 피난봇짐을 찾으러 친정으로 가다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몸 져 누워있었다.
1.4 후퇴! 아군의 후퇴 작전에 또 다시 피란 길에 오른 또 다른 아귀비환의 실체, 그때 남편은 학도병으로, 나는 친정 집에 고모님의 가족들이 시어머님과 네 살 난 아가를 데리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었는데 이미 난간까지 매달린 초만원, 시어머님과 고모가 밧줄을 얻어 아가의 몸을 묶고 기차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서 온 식구가 꼭대기에 난관을 이용하여 밧줄로 칭칭 감은 후 난간에 떨어져 죽은 사람,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부산에 도착하여서도 금정 국민 학교 수용소에서 들어가 지내는 동안 에도 넘나들었으나 지인이었던 김 인식 공군헌병을 만나 동래 온천 공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행운을 얻어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다. 사람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피난길에 깔려 죽고 달리는 기차에 밧줄을 놓쳐 떨어져 죽고 굶어 죽고 의서를 만나지 못하여, 혹은 의서는 있으되 약을 구할 수가 없어 죽고, 많은 생멸들이 어이없이 동족 산생 에 희생이 되어 남편과 아이를 그리고 친지들의 생사를 모르는 체 목이 메는 이산가족들의 절규가 천지에 메아리 쳤다.
그렇게 또 피를 말리는 몇 달이 지나간 어느 날이었다.
수련한 군복차림을 한 남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보! 나 왔어, 살아 있어주어 고맙구려!” 그 한마디를 던지고 훌쩍 나를 않아 짚 차에 싫고 어디론가 달리는 것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거침없는 굵은 눈물이 뚝뚝 소매위로 떨어졌다. 남편의 말인즉 부대가 후방에 주둔하게 되어 부산에 있었는데 남편과 시누이가 동례 온천 앞에서 기적적으로 만나 그 길로 나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는 모래알처럼 피란민들이 밀리고 북적대는 부산에서 가족이 만났다는것, 얼마나 큰 하나님께서 내리신 기적 같은 축복인가?
다시 우리가족이 만났다는 것, 나는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시어머님께서 떡을 빚어 파시는 떡판을 들고 금정산 에 있는 부대에 가서 팔 곤했었는데 그 어린 놈이 떡 함지 앞에 앉아 ‘하나님! 떡을 많이 팔게 하여주세요. 라고 작은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
인천상륙! 세계 역사에 영원히 남을 9.28. 수복!
맥아더장군의 슬기로운 작전! 지금은 오랜 세월에 씻겨 뒤안길에 사라진 역사라고 하고 그나마도 젊은이들은 낡은 책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빗 바랜 이야기라고들 한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그때의 감격과 가슴 벅찼던 환희를 또 어찌 말로 다 할까? 서울을 탈환하고 정부와 질서가 잡혀가면서 평화를 찾았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내려주셨던 그 기적에 천만번 감사를 드리며 온 집안이 신앙의 뿌리를 더더욱 다지면서 아가는 티없이 무럭 무럭 잘 자라주었다.
‘구삭동이’ 라고 불안에 떨었던 잠재의식은 우리가족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랜 이야기이다.
안암동에 있는 Mission School 인 대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대 미대를 가려고 하였으나 본인의 뜻에 의하여 인하 공대로 들어 갔다가 군 복무를 맞히고 다시 복귀하여 박사과정을 끝내고 지금은 모 대학교에 교수로 공학도를 배출하는 일선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생각하면 그 어려운 아귀비환의 현장에서 우리가족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매일 매일 새벽, 교회의 찬 마루 바닥에 엎디셔서 ‘구삭동이’ 손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며 간구하신 축복의 기적을 이루어주셨다고 믿으며 우리아이와 우리가족들 그리고 이 나이 까지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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