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부정행위 증가 유감
성적보다 양심 잃지 말아야
알고 지내던 학부모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학교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있는 친척 아이 하나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숙제를 보여준 것이 교사 눈에 띄어 두 명이 모두 부정행위로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숙제를 보여준 학생의 부모가 너무 억울하다면서, 학교 측에 정상참작을 해서 처벌을 경감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이 부모 측에서 볼 때, 남의 숙제를 베낀 학생이나, 친구의 간청 때문에 할 수 없이 보여준 학생에 대해서 똑같은 처벌을 내린 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일 뿐 아니라, 중요한 시험도 아니고 매일 하는 숙제를 보여주고 베낀 것에 대한 처벌 자체도 너무 심하다는 것이 정상참작을 요청하는 근거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학교 측의 처벌이 공평하지 않으니까, 좀 더 높은 자리의 행정가에게 해당 학부모가 직접 어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할 수 없었다. 남에게 숙제를 보여준 것도 엄연한 부정행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가서 어필을 해도 처벌을 취소시킬 수도, 경감시킬 수도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컨닝이라고 알려진 부정행위는 아마 시험이라는 제도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갈만큼 역사가 길다. 응시자의 실력을 가장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시험 본래의 목표를 무색하게 할 만큼, 부정행위는 오랜 세월동안 바이러스처럼 시험제도에 끈질기게 붙어서 건재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들의 컨닝하는 방법에 대한 기사를 읽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과거에 급제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본인과 가족, 가문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는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아무리 평소에 곧은 선비라 하더라도 부정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선비들은 응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넓은 소맷자락 속에나, 붓자루 통속에 예상시험 문제를 집어넣는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했다.
몇백 년 전에 일어났던 부정행위나 최근까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부정행위가 소수의 수험생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이고, 전체적으로 보아서 다수의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에는 시험만큼 객관적이고 공평한 제도가 없다는데 큰 이의가 없었다. 나 역시 이렇게 믿어왔었다.
그런데 며칠 전 ETS에서 주관한 부정행위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읽고, 시험제도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사실은 이 연구 결과에서 발표된 내용이 내 자신이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보고 듣고 막연히 우려했던 심각한 문제를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SAT, 토플, AP 시험 등 우리에게 낯익은 시험과 여러 다양한 분야의 시험을 관장하고 있는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에서는 권위 있는 연구단체에 부정행위 전반에 관한 연구를 위촉해서 ‘Cheating Is a Personal Foul’이라는 제목 하에 결과를 발표했다. 부정행위의 방법, 현재의 상황, 부정행위를 하는 이유, 사회에 끼치는 영향, 근절 대책에 관한 이슈를 분석하고 검토한 것이었다.
부정행위란 남의 노력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위장하는 행위라고 정의를 내리고, 이런 행위에 간접으로 가담하는 것도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숙제를 베끼거나, 보여주는 것, 시험 중 답을 물어보거나, 가르쳐 주는 것, 학기말 논문을 베끼거나, 써주는 것, 학위 논문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 대리시험을 부탁하거나 응시해 주는 것 등을 모두 부정행위의 예로 들었다. 이 연구에서 발표된 통계를 몇 개 소개한다.
*전국에서 최상위권 우등생들 중 80%가 반에서 일등을 하기 위해서 부정행위를 했다.
*조사 응답자 중 반 이상이 부정행위가 그리 큰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부정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학생들 중 95%가 들키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에는 주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낙제를 면하려고, 부정행위를 많이 했지만, 요즈음에는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우등생들 중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고등학교 학생들 중 70%와, 중학생들 중 54%가 지난 일년 동안에 시험 치면서 부정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
*1940년대에는 20%만이 부정행위를 인정했는데, 이 숫자는 매년 증가해서, 지금은 최소 75%로 부터 최고 98%에 이르는 압도적 수의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
김 순진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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