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서북지방에 있는 몽골 최대의 호수인 흡수골을 여행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디언들의 천막가옥과 똑같은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몽골에서 흔히 보는 전통가옥인 ‘게르’와는 완연히 다른 주거 형태였다. 여러 개의 나무 장대의 끝을 모아서 세우고 천막으로 덮어씌운 것이었다. 서부 개척시대 아메리칸 인디언의 가옥과 똑같은 것이 지금 2천 년 대에도 존재한다니...나는 그만 입이 벌어진 채로 잠시 동안 멍해졌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바로 몽골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동이족(東夷族)임이 틀림없다.
윤상환 선생님이 쓰신 책인 ‘아메리카 인디안 투쟁사’? 의하면 지금은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
고 있지만 인디안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으며 최초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이라고 밝혔다. 기원전 30,000년경부터 이미 이 대륙에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고고학적인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 산타로스(Santa Rose) 섬에서 발견된 목탄(heath charcoal)이 바로 인간의 조상들이 지구상에서 살아 온 흔적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 28,000년에서 10,000년 사이 대빙하시대(The period of the great glaciers)에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는 지금처럼 바다가 아니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이주가 가능했던 것이다. 폭이 160Km 길이가 1,600Km나 되는 광대한 평원에는 포유류 동물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 목초들이 무성했었고 동이족은 이 초원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사냥하여 식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쉽게 이동 할 수 있었다. 미국의 북부나 서부에서 볼 수 있는 버팔로와 똑같은 소떼를 몽골의 서북부 산악지대에서 보았는데 그 방면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도 버팔로의 대륙간 이동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아메리칸 인디안과 몽골사람들과 우리 한민족이 같은 동이족이라는 것은 몽골반점(Mongolian spot)이외에도 그들의 습관이나 취향이나 정서로 미루어 볼 때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1620-1621년 겨울 사이에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대륙 플리머쓰(Plymouth)에 상륙한 필그림(Pilgrim) 영국인들은 혹한과 식량부족으로 인하여 기아와 질병으로 절반이 죽었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그들을 구제하여 준 사람들이 바로 메사추세추의 원주민인 왐파노아그(Wampanoag)부족이었다. 그래서 왐파노아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도 없다는 말이 있다.(아메리카 인디언 투쟁사에서) 그런데 그들 원주민들이 이렇게 낯 선 이방인들에게 환대를 베푼 까닭은 바로 그들의 정서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은 낯선 손님이 방문하면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음식을 후하게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왐파노아그 족은 이들 유럽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옥수수 농사법을 가르쳐 주었고 엄동설한을 넘길 수 있는 월동대책과 야생의 식용식물을 채집하고 동물을 잡는 수렵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것은 이 왐파노아그 부족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 대륙에 정착한 모든 동이족 원주민들의 관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서는 지금의 몽골인들도 똑같다. 몽골에서 몇 해 살아 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몽골인의 의식구조는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인디언들은 참으로 인정 많고 넉넉한 사람들이었다.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과 박애정신은 그들 사회의 최고의 미덕이었다. 백인들이 대륙을 찾았을 때 그 누구보다도 환대를 많이 받았는데 그 극진한 대접을 최초로 받은 자가 바로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였다. 그러나 그 환대의 대가는 감사가 아니라 배신과 살육과 강간과 부족을 멸절시키는 악행이었다. 컬럼버스를 맞이하여 극진히 대접했던 캐리비언섬의 타이노(Taino)족과 아라와크(Arawak)족은 그들에게 포획되어 스페인의 노예로 팔려갔고 주택은 불태워졌으며 재산은 약탈당했고 마침내 그 부족은 섬멸당하고 만 것이다. 컬럼버스가 그 땅에 발을 디딘지 10년 만에 그 두 부족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컬럼버스 이후 이 땅의 백인들은 원주민의 땅에서 황금이 발견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뺏았으며 그런 일을 자행하는 데는 워싱턴 디씨의 미국 연방정부도 마찬가지였다. 1570년 프랑스 인구통계에 따르면 잉카제국의 원주민이 1,300백만이었는데 1620년에는 70만으로 줄어들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등 유럽의 제국(諸國)은 그런 식으로 우리 동이족이 먼저 자리를 잡은 남북미 대륙에 난도질을 해댄 것이다. 1783년 파리조약에 의해서 독립을 승인받은 미합중국은 애팔래치안 산맥에서 미시시피에 이르는 광대한 원주민의 땅을 어떻게 처리할 까 고민하다가 1783년 토지법을 제정하여 그 땅을 무조건 연방정부의 땅으로 선언을 했다. 그리고 1평방 마일(640 에이커)을 1달러에 불하한다고 발표하였다.
지금의 몽골인들도 토지는 공동체 모두의 것이지 개인이 사유화 한다는 개념은 알지 못하는데 당시 인디언들은 말해서 무엇하리요. 그래서 그렇게 당했던 것이다. 유럽인들이 대륙에 발을 디딘 것은 토지를 취득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 앤드류 잭슨이 1828년 대통령이 되면서 인디언에 대한 공격적인 정책을 폈는데 그것은 인디언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말이다. 1830년 미 의회는 이주법안을 통과시켰고 스캇트 장군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그해 시월 동남부지방의 체로키부족을 제일 먼저 오클라호마로 이주시켰다. 그들은 짐승처럼 미시시피강으로 떠밀려 쫓겨갔다. 목적지까지 3,250리(1,300Km)를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입은 옷도 변변치 못한 겨울날에 총 든 백인병사들의 감시 하에 개처럼 끌려간 것이다. 얼어서 죽고 굶어서 죽고 병들어 죽고 도망치다 총에 맞아 죽고 심장마비로 죽고 게다가 젊은 여인들은 백인병사들에게 밤마다 또 당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려 4,000명이 죽어나갔다. 이 비참했던 행로를 눈물의 행로(trail of tear)라고 불렀는데 마침 그 비참한 광경을 보고 기록을 남긴 사람은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토크빌(Tocqueville 1805-1859)이었다.(상게서에서 인용)
이는 마치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을 화물열차에 화물처럼 실어서 카작스탄의 황야로 내어 쫒은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우리 동이족들은 이렇게 수난을 겪어야만 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정의의 칼을 휘두를 것인지 자못 긴장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성경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선언한다.
나의 신학(神學)과 신앙(信仰)의 주요 관심 주제는 사회정의(社會正義,Social justice)다. 그것은 일찍이 구약시대의 예언자 아모스가 일갈한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아모스5장)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몇 분 교수한테 당신은 사회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대부분의 교수들은 관심 있다고 했고 어떤 분은 실지로 몸으로 뛴 분들도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면 당신들 백인이 미국의 원주민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이 땅을 차지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신들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은 사실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느냐? 하고 재차 물으면 얼굴이 뻘개지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 한 명을 죽인 살인범이나 절도범에 대해서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백인들이 미국 땅의 주인으로 수 천 년 혹은 수 만 년을 평화롭게 살아 온 이 땅의 주인들의 땅을 강제로 절도하고 수천만 내지는 억에 가까운 무고한 생명들을 무자비하고 참혹하게 집단적으로 학살하고 능욕한 죄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을까. 흑인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노예로 부려먹고 잔인하게 대접한 죄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고 있을까? 이것이 미국인들의 신학이며 기독교의 믿음이란 말인가.
미국 내의 수많은 저명한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은 왜 자신들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범한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을까. 수많은 신학대학에서 신학서적이 엄청나게 많이 출판되지만 그들 조상들의 범죄를 다룬 서적이 출판되었다는 말은 아직 금시초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신학이요 신앙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다음 주는 미국의 모든 교회들이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릴 것이며 이 달 26일은 땡스기빙(Thanksgiving) 데이(day)로 미국의 국경일이다.
수많은 인디언들의 억울한 죽음과 약탈과 절도위에서 이루어지는 땡스기빙 데이의 감사를 과연 하나님은 흠향하실까? 미국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사죄해야 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당한 동이족을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들어 쓰실 것이다. 요한 계시록의 촛대는 마침내 동이족에게로 옮겨 질 것이다. 이것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아닐까 한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인디언 샤먼이 천제를 올릴 때의 복장. 곰가죽에 인디언 치장을 하고 오른 손에 창을 들고 왼손에 얇은 북을 들고 있다. 북에는 곰발문양이 그려져 있다. 곰은 한웅천왕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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