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기’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41년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을 창간한 헨리 루스가 그 해 ‘라이프’잡지 특집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었다.
상황은 극히 혼미했다. 대공황의 끝자락에서 미국은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다. 반면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은 무섭게 그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 정황에서 루스는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선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채 못돼 ‘미국 세기’는 끝났다는 말이 유행이다. 심각한 경기불황, 늘고만 있는 국가부채, 과도한 군사적 부담, 거기다가 중국의 부상이 거론되면서 미국 쇠망론은 이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수퍼 파워로서 미국의 존재는 이제 끝났다’- 이 말은 그렇지만 요즘만의 유행어는 아니다. 한 세대 전, 그러니까 70년대의 화두 역시 ‘미국 세기의 종언’이었다.
베트남에서의 군사적 모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경기도 엉망이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은 좀처럼 가실 기운이 없다. 그래서 생긴 말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소련의 도전은 계속 거세지고 있었다. 아프리카가, 라틴 아메리카가 붉게 물들었다. 중동에서는 회교근본주의 세력이 대두, 이란의 팔레비 정권은 호메이니 회교혁명에 무너졌다.
뒤이어 발생한 사건이 치욕의 이란 인질사태다.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위상은 최저점을 기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수퍼 파워로서 미국의 존재는 끝나고 공산주의 헤게모니의 세상이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 패배주의 무드가 정점에 달한 시기가 1979년이었다.
그 때 이후로 소련제국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80년대 전 세계를 휩쓸던 일본 경제도 하강국면을 맞는다. 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이 그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시련을 극복, 냉전 승리와 함께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로 군림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은 1979년과 흡사한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 쇠망론’이 마치 시대의 표어라도 된 느낌이다. 그 불길한 예언은 그러면 맞아 떨어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제임스 쿠르스 같은 정치학자도 같은 견해로, 그에 따르면 ‘미국의 파워가 지배적이던 시대’는 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지도적인 파워’로 남는 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19세기 국제사회에서 영국이 누렸던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미국 세기’는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세기가 미국의 세기가 되게 한 펀더멘털을 재점검했다. 미국의 산업력, 군사력, 소프트파워 등이다. 그리고 내린 진단은 이 펀더멘탈은 여전히 건강한 편이라는 것. 따라서 미국 쇠망론은 일종의 기우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 때 70년대 말의 상황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게 하나 있다. 그 때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계속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페기 누난의 지적이다.
그녀 역시 30년 전과 오늘을 비교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미국이 맞은 진짜 위기는 전쟁도, 막대한 재정적자도, 테러리즘도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장래에 대한 희망과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고 있을까. 리더십의 부재가 아닐까 본다.
정권교체와 한께 처음에는 잔뜩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이내 실망이다. 미국이 잘못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52%가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비상(非常)시에는 비상한 사람이 있어 비상한 공을 이룬다. 이 말을 바꾸면 위기에 요구되는 것은 남다른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페시미즘의 어두운 바다에 희망을 쏘아 올렸다. 그 결과 찬란한 미국의 재건을 이끌고 냉전도 이겼다. 레이건 대통령이다. 미합중국의 분열은 필연적 수순으로 보였다. 그걸 막았다. 링컨이다. 대공황의 공포에서 미국을 해방시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위대한 대통령은 다름이 아니다. 비상시에 비상한 리더십을 보여준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런 기대를 걸어도 될까. 어딘지 불안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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