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가을을 충분히 느낄 사이도 없이 변덕스러운 날씨는 어느덧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 차가운 바람이 더 기승이다. 늦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날씨에 나무가지에 있는 총천연색 빛깔고운 단풍이 아닌, 비바람에 떨어져 나뒹구는 인도위의 낙엽들을 보면서 가을이 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인 동시에 ‘행사의 계절’이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전시회장 부스 디자인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행사 컨셉에 맞춰야 되고, 전문적인 비즈니스 쇼에서는 각 업체들의 특성을 살릴만한 개성있는 이름 하여 엣지있는스타일을 요구하신다. 디자인 작업전 행사 장소를 방문할 때 건축과 인테리어라는 직업을 가진 필자도 아주 가끔씩은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연회장의 화려함에 움추려들 때도 있다. 거의 다 갖추어진 장소이다 보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닥 까다로워 보이진 않았다. 조명이며, 음향 준비도 한결 수월하
고 신경쓰이는 부분이 작았을 것이다.
이렇듯 잘 짜여진 완벽한 공간에서는 약간의 터치도 큰 효과를 내는 듯, 더 화려하고 행사분위기를 높여주는 것 같았다. 워낙 여러가지 행사에 불려 다니다보니 이런 약간 판에 박힌듯한 행사장의 식상함도 느낄 수 있었다.간혹 전문적인 비즈니스쇼에서 한국 기업들을 만날 때면 필자의 어깨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지고 마음이 여간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다. 그러다 뉴욕, 뉴저지지역 한인들이라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분은 고향 동무를 만나는듯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열심히 자기 전문 분야들을 개척하고 미국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 힘든 시기에 비즈니스를 꾸려 나가는 모습들은 과히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얼마 전 AWCA 의 ‘제 1 회 북 클럽과 수필 교실 개최 낭독의 밤’이라는 뉴욕, 뉴저지 한인들 행사에 두 주에 한번씩 신문에 칼럼을 기재한다는 이유로 게스트 낭독자로 초대 받은 적이 있었다. 많은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이 행사는 한마디로 따뜻한 한국인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시, 수필, 음악과 미술을 교류하며, 만나는 음식도 나누는 자리, 그야말로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가슴 따뜻한 행사였다. 티넥에 위치한 이 강당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평범한 곳이었다. 음향 시설, 조명 시설 또한 그냥 그런 장소였다. 이런 소박한 장소를 여느 화려한 홀 못지않게 행사를 이끌어 낸 스텝들의 노력이 실로 놀라웠다. 전문 건축인인 필자의 눈과 귀를 다시 한번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큰 연회장에 비해준비과정과 노력을 더 많이 들었을 것이나 참관하는 사람에게는 더 독특한 느낌의 행사로 다가와서 그만이었다.
요즘 경기 같아서는 행사 자체가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빠뜨릴 수 없는 연말 행사를 두고 고민 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꼭 그 행사장이 세련된 부대시설, 고급 음식들로 가득 찬 화려한 연회장이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말이다. 조금 손은 더 가더라도, 신경쓸 일은 더 많아지더라도, 얼마든지 의미 있고 따뜻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곳들이 조금만 신경써서 주변 로컬에서 찾아본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AWCA 행사를 통해 새삼 느꼈다.
전문적인 음악회가 아니라면, 행사의 특성에 따라 음향이니 조명이니 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값싼 천으로 실내 창문이나 내부 벽들을 조금 커버를 하면 훌륭한 방음 효과를 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의 분위기 위주의 스탠드 조명도 IKEA 나 조명 가구점들이 즐비한 17 North 선상의 스트릿 가게들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액센트 효과를 내기에는 그만이다.경제적인 이유로 다들 여유가 없어져서 한인들의 행사가 무의미하게 되거나 무산되는 것이 안
타까웠다. 지레 겁부터 내고 뒤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현명한 장소를 물색해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독특한 행사를 이끌어 나가길 바래본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휘청이는 단풍이나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채이고 있는 낙엽이나 아직은 가을임을 믿게 하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겨울 바람은 사람을 움추려 들게 하는 특징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늦가을이라고 믿고 싶고, 이 바람이 가을의 향기를 실어다주어 마음과생각의 여유가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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