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보 국토 종단기 <29> 강원도 양양을 지나며
버스를 타고 어제 멈췄던 어성전으로 가서 양양읍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다리가 끊기고 길이 쓸려간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2002년 로사태풍 때 피해가 컸다고 한다. 새로 만든 다리를 건너간다. 냇물 따라 길이 나 있고, 길옆은 벌판이다. 어성전 냇물이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어제 지나왔던 물푸레 골에서 흘러 온 물도 저기 섞여있을 것이다. 개울은 자신이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끊임없이 흘러 바다에 이른 다음에야, 개울은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고 완성임을 알게 된다.
연어는 강을 오르며 소리를 지른다네…
어성전 마을 촌로 “아, 통일 되고말고”
일당 3만원에 산불예방 활동도 인상적
양양군 서면 수리마을에 이르렀다. 상점에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비비빅 한 개를 사 먹었다. 가게 주인과 얘기를 나눈다. 올해 88세 이시란다. 이 지역이 38선 이북이었는데, 휴전 때 국군이 고성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이남이 되었다고 한다. 통일은 될 성 싶으냐고 물었더니, “아, 3국시대도 있었잖아요. 통일 될꺼요.” 하고 못을 박는다.
‘산불조심’이라고 쓴 빨강색 모자를 쓴 분이 가게로 들어온다. 이 마을 사람인데 3월부터 3개월 동안이 산불예방 기간이라, 군청에서 선발한 행정 보조원으로 활동하는 중이란다. 일당 3만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무전이 계속 오간다.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이동추적기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데 국토종단 중이라고 소개를 했더니, 명함 한 장을 건네준다. “한남초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김형기”라고 적혀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초등학교동창회장’ 명함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장 명함을 저렇게 당당하게 건네주다니!
“나는 김수로왕 자손인 김해 김 씨인데요, 할머니가 인도 분이였지요, 아유타국에서 온 분이니 그때 벌써 국제결혼을 한 셈이에요.” 재미있는 분이다.
요즈음 양양군 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악기 반에서 태평소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지난 해 강릉축제에 갔더니 큰돈을 주고 태평소 부는 사람을 서울에서 초대했던데, 열심히 배워서 무료로 태평소를 불어주어야겠다”며 웃는다.
솜씨를 보여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하모니카와 태평소를 가져와 멋지게 한 곡씩 불어준다.
양양 인구는 2만9,000이고, 부근에 설악산 한계령, 오색약수터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고 자랑이다. 동서고속도로가 뚫리면 수도권과 2시간대로 연결이 될 것이며, 그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양양을 다녀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따져보니 김 회장은 나와 동갑이다. 점심이나 먹자며 집으로 끌고 간다. 술 한 잔을 하면서 자분자분 풀어내는 그의 얘기가 가슴을 울린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부엌에 나가보니 어머니가 솥 밑바닥을 훑은 맹물을 마시고 계시더란다. 그 길로 집을 나가 머슴살이 5년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논 1,500평을 사 드렸더니, 어린 가슴을 후비던 솥 밑바닥 긁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더라고 했다.
가슴이 찡했다. ‘꼬마둥이 일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어머니가 굶지 않도록’, 어린 나이에 ‘5년 동안’이나 힘든 일을 해냈다는, 김 회장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이 본받도록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만큼 자리를 잡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겸손해 하는 김형기씨. 그의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점심을 배불리 먹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양양대교가 보인다. 그 아래 흐르는 물이 남대천이다. 연어는 양양의 특산물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바다로 나가 생명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5년 정도 치열하게 살아 어른이 된 연어는 아련한 고향냄새를 찾아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고 생애를 마감한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자연의 신비다.
연어는 냇물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소리를 지른다. ‘남대천의 연어 올라오는 소리’는 환경부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발굴하여 채집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가리왕산의 여치소리, 서산 보리밭의 종달새 소리, 거제도 몽돌해수욕장의 파도 쏠리는 소리 등과 함께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의 소리로 뽑힌 것이다.
매년 10월이면 연어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그 때, 이곳 남대천에서 연어축제가 벌어진다. 팔뚝만한 연어를 손으로 잡을 수도 있고, 다양한 연어 요리를 맛볼 수도 있다. 양양대교를 건너 양양읍에 들어선다.
<정찬열>
한계령을 넘어 설악산과 속초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의 목을 축여주는 오색 약수터. 그 독특한 맛은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10월마다 열리는 양양의 연어축제는 이제 외국인들도 찾아와 즐길 정도로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직접 손으로 연어를 잡은 외국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양양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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