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1917년 9월 30일(음력) 경북 선산에서 5남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은 집안이 어려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으로 간장 한 사발 마시기, 밀기울 끓여 마시기, 섬돌에서 뛰어내리기, 장작 더미위에서 곤두박질 쳐보기, 수양버들 강아지 뿌리 달여 마시기, 물레방아에 스스로 깔리기 등 낙태를 위한 온갖 민간요법을 총동원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대구 사범학교에 들어가 잠시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던 군인이 되고 싶어 다시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간 후 이름도 다카키 마사오로 바꾸고 “나 다카키 마사오는 일본 천황을 위해 사쿠라처럼 목숨을 버리겠다”는 맹세를 한 후 충용한 일본 신민이 된다.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이 진 후에는 북경에서 한국광복군에 편입돼 부산으로 들어온다. 그 후 남로당에 가입했다 발각돼 1948년 사형언도까지 받지만 동료들의 이름을 모두 불고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당시 그를 놔줄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분분했으나 “동료를 밀고한 좌익은 거세된 환관과 같다”는 의견에 따라 풀려난다. 박정희가 좌파로부터 두고두고 욕을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61년 5월 16일 그는 민주주의를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 3선 개헌을 해 1971년 집권한 그는 다음 해에는 사실상 궁중 쿠데타인 10월 유신을 선포, 종신집권의 길을 연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의 권세는 ‘용인의 천재’라는 그의 별명을 무색하게 만든 김재규 정보부장의 총알에 의해 끝나고 만다. 그게 벌써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의 일이다. 그의 집권 18년 동안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르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인간적으로나 나라를 위해서나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배신을 밥 먹듯 하고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으며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그러나 그의 집권 초 아프리카 수준에 불과하던 한국 국민 소득이 그가 죽을 때는 개발도상국 반열에 올라섰고 보릿고개면 먹을 것이 없어 헉헉대던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이 이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이어트를 해 살을 빼느냐가 최대 관심사가 될 만큼 변했다. 지금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조선과 철강, 중화학, 자동차, 전자 산업 등이 모두 그가 집권하면서 키운 것이다. 한국 첨단 기술의 산실 과학기술원(KIST)도 대통령 월급의 몇 배를 줘가며 외국에 있는 한국 과학자를 끌어와 그가 세운 것이다.
그가 경제 개발을 추진하는 동안 비판자들이 한 것은 오로지 반대뿐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산업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한 대일 청구권 협상 때도 반대,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월남 파병도 반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착공에도 반대, 그의 집권 내내 야당과 대학생, 지식인이 한 일이라고는 반대밖에는 없었다.
당시 한국 학계를 대표하는 한 경제학자는 경부 고속도로를 놓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시기상조일뿐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이 부유층이 자가용을 몰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골프 치는 모습을 보면 국민적 위화감이 조성돼 사회적 분열만 일으킬 것이라고 설파했다. 경부 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란 게 지금은 상식이다.
이런 그의 일생은 북한의 김일성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10대부터 항일투쟁에 나섰던 김일성은 독립 빨치산의 리더가 돼 일본군과 싸웠다. 한국 해방 직후까지 그의 업적은 박정희를 압도한다. 그러나 그는 집권 후 자기가 책임져야 할 6.25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려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스탈린을 능가하는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그 후에는 철저한 폐쇄주의를 내세워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나라로 만드는가 하면 자기 자식에게 권좌를 물려줘 세습 공산 왕조 수립이라는 세계 유일의 기록을 세운다.
인간은 누구나 영웅이 나타나 악당을 내몰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서부 활극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처럼 매끄럽지 않다. 악당이 때로는 좋은 일을 하는가 하면 착하던 사람이 타락하기도 한다. 한 인간의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진리를 찾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는 3만명을 괴롭혔지만 3,000만명을 먹여 살렸다”는 한 지식인의 말이 박정희에 대한 옳은 평가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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