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허드슨 강을 건널 때 자주 다니는 Tappan-Z 다리의 가장 높은 부분 난간 위에 이런 영어 표지판이 있다. 인생이란 살아볼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생명의 전화 상담번호가 적혀있다. 이 다리는 길고 높아서 종종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이들이 뉴스에 나오는 일들을 벌이는 곳이 된다. 2주일 전에도 자살한 사람이 있어 서쪽방향의 다리가 잠시 불통이었다.
생명에 관련된 얘기를 할 자격을 주는 공부도 한 적이 없고, 상담에 대한 준비도 필자는 되어있지가 못하다. 이 분야에 권위가 있는 분들이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최근 같은 분야에 종사하시는 어느 은행가의 자살을 듣고 나서, 오랫동안 한인경제와 금융분야를 바라본 필자는 무언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짐을 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오늘은 전문가로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한 동료로서 차 한 잔 마실 때의 가벼운 기분으로, 무거운 제목을 단 이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한국에서의 일은 여기에서 빼고, 위대한 역사에 남을 일을 한 이 들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치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론이 크게 슬퍼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들에 대한 잔인한 농담들도 많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서 한참 생산적인 일들을 더할 수 있는 전문인들이, 더구나 한인사회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정도의 빈도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고 걱정되게 하는 것이다.
Gloomy Sunday 란 노래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노래인데, 한국에서는 옛날 이상 이란 좀 유별난 시인이 단골 카페에 나오면 매일 신청곡으로 틀어 달래서 들었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 나온 헝가리 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자살을 방조 했다고 해서 신문과 방송에서 그 노래를 작곡한 피아니스트에게 화살을 돌려 그도 결국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동명의 십몇년 전에 나온 영화에서도 나온다.
이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외로운 일요일이란 테마음악 말고도 Komm Zigan이란 다른 주제가도 무척 마음을 적시는데,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한 이 영화 안에서 단순한 멜로디의 노래에 붙일 가사를 죽기 전까지 완성하지 못한 작곡가 (그는 평생 이 노래 하나밖에 작곡한 노래가 없다)가 부다페스트의 다리 난간에서 한 얘기가 자살에 대해서 잠시 이런 화두를 던진다.
이세상의 거지같은 (실제 단어는 더 심한 표현인 데 공공 언론에서 사용하기가 좀 어렵다) 현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인간이 마지막으로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 아닌가란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하면, 이 노래와 영화는 자살을 방조하기는커녕 인생과 사랑의 강인함과 영속성을 너무나 뚜렷이 보여주는데 성공적이다. 나치 독일의 점령과 횡포가 이 헝가리 보통사람들과 유태계 거주인들의 생활에 눈물을 가져오지만, 우리는 연약한 한 여자의 인생을 통해서 사랑의 궁극적 가치와 힘에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약하게 어두운 면을 볼 수가 있는가하면, 반면에 반대쪽의 희망과 힘을 볼 수가 있는 진실이 나치 독일 시대의 생사를 좌우하는 어려운 시대에서나 지금의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나 공통되지 않을까. 경제가 워낙 어려운 시절이라 여기저기서 힘들고, 지난번 경우처럼 은행에서 부실대출 사후관리를 맡으신 분들은 요즘 정말 어렵다.
그런 세월을 보내려면 우리 모두 서로에게 너무 어렵게 하지 말고 좀 나이스 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직장에서도 우리 너무 무례하게 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힘들게 할 때라도 서로 예의를 갖추고 품위 있게 대하면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도 좀 덜 힘들어하지 않을까한다.
정말 더 이상 인생의 어려움을 참기 힘들다고 괴로워하시는 분들은 혼자서 어려워하지만 말고 누구에겐가 얘기를 하는 게 좋다고 나의 문의를 받은 같은 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조언한다. 원래 조용하고 성품이 부드러워 혼자서 어려움을 마음속에서 삭이는 분들이 자살을 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우리 한인금융계에도 지혜를 갖추신 원로들이 많으시고, 또 조언을 더 나이든 분들에게 서만 구할 필요도 없다. 필자는 젊은이들을 많이 알고 있는 데, 많은 이들에게서 지혜를 배운다. 마음이 아프고 세상이 너무나 힘든 분들도, 혼자서 괴로워하지만 말고, 누구에겐가 얘기를 하도록 권한다. 세상엔 너무나 길이 많다. 한 길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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