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자장면은 정말 맛있어”라고 말한다. 다음 날 보수신문들은 “노대통령 발언 파문! 자장면이 짬뽕보다 맛있다”라고 1면에 대서특필한다. 신문들은 기사에서 “최근 자장면이 맛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발언은 짬뽕은 맛이 없다는 최근 노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비판한다.
청와대로서는 가만히 있기 힘든 일. 대변인은 “진의가 왜곡됐다. 자장면이 맛있다고 해서 짬뽕이 맛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해명한다. 보수신문들 역시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다음 날 신문 1면에는 ‘짬뽕 비하 발언 일자 노대통령 또다시 언론타령“이란 기사가 실린다.
노대통령 재임 당시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누리꾼들의 실소를 자아냈던 ‘노무현과 자장면’이라는 유머다. 노무현 시절 이런 왜곡을 빗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패러디들이 생겨났다.
노무현은 재임 5년 동안 내내 힘 있는 보수언론들과 불화했다. 이런 불편한 관계는 청와대를 나온 뒤까지 이어졌다. 그가 퇴임 후 내려가 살려고 지은 봉화마을 사저는 보수언론들에 의해 ‘초호화 아방궁’으로 덧칠됐다. 이 집을 지은 건축가의 설명을 들어 보니 사저 건축에 들어간 돈은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초호화 아방궁’이란 보도를 아무 의심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욕을 해댔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왜곡의 지속적인 힘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오리지널 아방궁 소유주였던 지하의 진시황이 이 보도를 접한다면 불쾌해 할 것이 틀림없다.
노무현과 보수언론이 그랬듯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보수 케이블 채널인 폭스뉴스와 싸우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의 불편했던 관계가 헬스케어 개혁 등 현안들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폭스의 보도로 폭발한 것이다. 백악관은 폭스의 보도가 악의적이고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폭스뉴스는 뉴스도 아니다”라는 독설 수준의 감정적 반응을 쏟아 낸다. 폭스도 이에 질세라 백악관을 ‘크라잉 베이비’라 조롱하며 맞서고 있다.
백악관으로서는 분통 터지고 열이 치솟겠지만 이것을 표출하는 것은 폭스의 페이스에 말리는 꼴이 된다. 폭스뉴스 시청자는 대부분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상실감을 맛보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다. 아무리 백악관이 화를 내고 폭스뉴스를 비판해도 절대로 그들을 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이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찾아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다. 폭스에 채널을 고정시키는 시청자들은 돈이고 권력이다. 백악관이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폭스의 ‘노이즈 마케팅’을 도와주는 일이 된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밀월관계, 건전한 긴장관계, 적대적 관계로 나눠볼 수 있다. 지나친 밀월은 권언유착으로 변질된다. 이런 관계에서는 흔히 은폐의 왜곡이 자행된다. 엄연히 있는 문제점을 없는 것처럼 외면하면서 독자와 시청자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반대로 무조건 트집거리를 찾아내는 데만 혈안이 된 하이에나 같은 언론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정권과의 친소관계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두 관계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계추 언론이다. 메릴랜드 대학 등 몇몇 기관 연구에 따르면 폭스뉴스 시청자들은 이라크 전쟁과 헬스케어 등 현안에 관련된 객관적 사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비율이 중립적 뉴스기관 시청자들보다 무려 2배나 높다. 뉴스 편식에 따른 심각한 정보 불균형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론 건전한 긴장관계이다. 언론은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동반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본분에 충실한 것이며 국민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불가근 불가원’, 즉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 언론과 권력 간의 거리다.
대통령이 일개 케이블 채널과 다투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폭스는 오바마 흔들기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오늘도 권력과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본령에 충실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오바마는 그런 점에서 노무현보다는 분명 행운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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