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는 미국의 명문대학에 합격했다가 중도 포기하고 귀국한 학생들의 사례를 보도하며, 토론식 교육 문화의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 기사가 보도돼 관심을 모았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한인 학생들도 막상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학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제대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아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정말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대학을 들어가는 것 못지않게 졸업하는 것 역시 한인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의 토론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본다.
한인학생 토론식 대학수업 못따라가 적응 어려움
사회적 이슈·사건 놓고 자녀와 대화 자주 나누고
잡지·신문 읽게하고 디베이트 클럽 가입도 도움
■ 무엇이 원인일까
1. 토론문화의 부재
공부만 따진다면 한인학생들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와 실력을 자랑하지만, 정작 대학수업에서는 매우 힘들어 하는데, 두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수학능력에서 차이가 날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대학의 수업방식에서 자신의 견해를 잘 정리해 발표하는 능력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이중에서 수학능력은 본인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개선될 수 있지만 토론 능력은 단시간에 이룰 수가 없다. 또 이 같은 토론능력이 한인학생들에게서 지적되는 것은 한인가정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자녀와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주제는 학교성적이다. 부모와의 대화에서 “학교에서 공부 잘했니?” “성적이 왜 그러지?” 등 아주 단순한 대화만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슈를 찾아내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녀의 사고능력을 한정시키고, 시야를 좁히는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와 달리 개인의 특기나 장단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공교육 시스템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2. 획일적인 교육방법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학생들의 성적은 정말 눈부실 정도이다. 학교성적은 물론, SAT 등 각종 평가고사 성적만 봐도 평균 점수가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나다.
학생들의 과외활동 역시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다. 병원이나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악기 한 두 개 정도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등 서로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조차 한인학생들의 지원서는 너무 비슷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다는 비슷한 견해들을 내놓는다.
천편일률적인 입시준비가 불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학업은 가장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자녀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관심사에 대해 부모가 실질적으로 키워주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3. 주변만이 경쟁 상대
현대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자녀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우리 주변이다. 같은 반 학생, 이웃 자녀, 같은 학원 친구, 심지어 친인척의 아이들까지도 경쟁과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다 보니 큰 꿈과 넓은 사고력, 판단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클럽이나 지역, 한 발 더 나아가 회사와 국가를 위한 리더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토론 능력 키우기
1. 가족 간 대화의 폭을 넓혀라
부모와의 대화에서 소재거리는 충분하다. 예를 들어 취임 9개월 밖에 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에 대해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자녀가 항상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항상 자녀가 얘기하는 것을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든 일에서 양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워라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직접 챙긴다면, 자녀가 고민해야 할 일이 없다. 이슈나 사건 등을 통해 스스로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사 잡지 또는 신문을 자주 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많이 읽는 것 역시 기본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또 유명 연설문을 읽어보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얘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얘기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짚어 주거나, 보완해 주는 대화를 통해 자녀가 한 단계 높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과정은 자녀가 자기표현 능력을 배가 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3. 자신이 원하는 과외활동을 시킨다
한인 학생들의 과외활동은 대학입시만을 겨냥한 구색 갖추기인 경우가 적지 않다. 거꾸로 이는 자신이 원해서, 또는 어떤 기회를 통해 새로운 것을 보고, 깨달아 자신의 인생목표 또는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대학 지원서 에세이에서 입학 사정관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글이 나올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통해 얻은 경험은 대학 지원서 에세이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대학 입학 후에도 확실한 가치관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 학교수업에서도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훨씬 빠른 적응력과 추진력을 갖게 된다.
4.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가정 일의 상당 부분은 어머니 몫이다. 물론 아버지도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아버지의 경험 전수는 자녀에게 정말 중요한 간접 경험의 기회가 된다. 또 사회적 이슈 또는 뉴스에 대해 자녀와 대화를 나누기는 어머니 보다 아버지가 유리할 수 있다.
5. 도움 되는 클럽활동들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보다 세련되고 한 차원 높은 토론문화에 익숙해지고 싶다면 북클럽 또는 디베이트 클럽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객관적인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울 수 있고, 발표력도 성장시킬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지적, 인격적인 성장도 가능해진다.
대학수업은 토론식이 많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어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면 대학생활이 힘들어진다(위쪽). 토론 능력을 키우는 출발점은 가정이다. 어릴 때부터 자녀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황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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