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보 국토 종단기 <27> 월정사에서 진고개를 넘어
템플스테이 온 사람들 법당 안에 가득
수행하며 가족의 안녕 비는 마음 절절
주문진서 모처럼 바닷바람에 소주 한 잔
목탁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50분이다. 아니, 이 신 새벽에 곤한 잠을 깨우다니. 목탁 소리가 멀어져간다.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모양이다. 곧 이어 조심조심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수런거리는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들려온다.
어제 저녁 방을 안내해주던 스님이 “새벽 4시30분에 예불이 있으니 참석하고 싶으면 하시라”던 말이 떠오른다. 객이 주인댁 예절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예불에 참석했다. 토방 위에 신발들이 가지런하다. 신발이 하도 많아 제 신을 찾아 신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만히 보니 숫자가 적혀 있는 흰 고무신들이 많다.
문을 여니 삭발한 스님들이 넓은 법당 안을 꽉 메우고 있다. 150명쯤 되어 보이는데, 일반인도 20여명 뒤쪽에 앉아있다. 방석을 끌어다가 맨 끝자리에 앉았다. 몇몇 스님은 끊임없이 절을 하고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님은 20명이고 나머지는 단기 출가학교 프로그램에 와서 삭발을 하고 예불에 참석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징이 울리자 예불이 시작된다. 모두 함께 절을 한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향한 중생들의 합창소리가 법당 안에 가득하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세음世音))를 듣는다(관觀)’는 뜻이라고도 했다. 세상의 소리를 헤아려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향해 바른 말도 바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불을 마치고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법당 앞마당이 연등으로 가득하다. 아직은 어둑한 숲길을 거니는데 밤새 맺혀있던 이슬방울이 이마에 후드득 떨어진다. 정신이 번쩍 든다.
6시30분 아침 식사시간에 맞추어 지하에 있는 공양간(식당)에 내려갔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와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배식창구 위 벽에 붙어 있는 글이 눈길을 끈다. “이 공양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세상의 온갖 욕심 버리고 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보니 템플스테이에 온 분들이다. 월정사에서 연중 상시로 운영되는 일반인을 위한 수행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새벽예불에 나왔던 분들도 섞여있다. 그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누던 중, 국토종단을 하는 중이라고 하자 탬플스테이 책임자인 법장스님과 김은미 팀장을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말씀하신분의 주선으로 식사 후, 두 분과 차 한 잔을 나누었다. 법장스님은 원래 가톨릭 수사였는데 불교에 귀의했고, 김은미 팀장은 버클리 대학을 나온 다음 인도에서 요가수업을 오래 했다고 한다. 월정사 수행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자원봉사자로 온다면 받아주겠냐고 물었더니 언제라도 환영이란다. 탤런트 배용준이 3월중에 1박2일 동안 이곳에서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갔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미’라는 책이, 그가 이곳에 머물었던 내용을 담은 것이라는 설명을 후에 김은미 팀장을 통해 들었다.
미국에 기사를 써 보내야 하는데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지 물었더니 종무소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쓰라고 한다. 사무실에는 스님 네 명이 마침 초파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법등을 달고 싶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자식의 복을 비는 사람, 남편의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 등, 갖가지 사연을 담은 연등이 형편에 따른 시주금과 함께 걸리게 되는 모양이다.
기사를 써 보낸 다음, 어제 저녁 올라왔던 황토 길을 일주문까지 걸어 내려간다. 빽빽한 전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부시다. 원래는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거쳐 설악산을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금지 기간이라서 진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삼거리에서부터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된다. 주문진 40km라는 푯말을 지나 올라가는데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숲이 우거진 호젓한 산길에서 모처럼 지나치는 자동차도 반갑다.
산마루에 있는 진 고개 휴게소에서 잠깐 쉰 다음, 산을 내려가는데 진눈개비가 한바탕 몰아친다. 골짜기마다 환하게 피어있는 산 벚꽃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인가보다.
해질녘에 부연동 입구 삼산 4리에 도착했다.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방값을 물어보니 너무 비싸다. 시내버스를 타고 주문진에 가서 자고 아침 일찍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정류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니 다행히 막차가 남아있다. 주문진에 나가, 모처럼 바닷바람을 맞으며 주꾸미 안주에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오늘은 시간도 잊고 생각도 비우고 마냥 걸었다. 철석, 파도가 밀려와 스러진다.
출항을 기다리는 고깃배들로 가득 찬 주문진 항구. 전형적인 우리 어촌의 모습으로 이곳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대산 중턱에 만들어진 생태 이동통로. 잦은 사고로 인해 야생동물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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