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서 가장 파워플한 부부가 누군지 알아?” “당연히 빌과 힐러리 아닌가?” “틀렸어, 해리와 루이스야. 힐러리네가 루이스부부에게 KO 당한 것 몰라?”
클린턴 집권 초기 힐러리의 야심찬 헬스케어 개혁안이 좌절되었던 1994년 무렵에 회자되던 유머 한토막이다. ‘해리와 루이스’는 클린턴 개혁안을 반대하는 TV광고 속 가상의 부부였다. 청구서가 수북이 쌓인 부엌 식탁에 마주앉은 중년 백인부부의 근심과 불안은 순식간에 미 전국 중산층 가정으로 스며들면서 공포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잖아요?”라는 루이스의 두려움을 통해 그들, ‘정부관료’의 일상 개입을 경고한 공포전략의 배후는 의료보험업계였다. 이렇게 클린턴 개혁안 침몰의 일등공신이었던 보험업계가 금년 오바마 개혁안과는 처음부터 손을 잡았다. 대화를 선호하는 오바마 쪽에서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3월초 백악관에선 보험업계 협의체인 미국건강보험플랜(AHIP)의 카렌 이그나니회장이 공개적으로 개혁안 지지를 약속하며 미디어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적과의 동침처럼 아슬아슬한 표피적 동맹은 여름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더니 이번 주 들면서, 결국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12일 AHIP가 느닷없이 상원 재정위의 개혁안인 바커스안이 통과될 경우 ‘중산층의 보험료가 대폭 인상될 것’이라는 경고성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민주당이 오랫동안 공들이며 기다려온 중반전의 마지막 관문인 재정위의 표결 전날에 감행한 ‘막판 기습’이었다.
개혁안 내용 중 보험업계에 가장 어필한 조건은 ‘5,000만명 새 고객’이었다.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가 실현되면 보험료를 정부가 보조하든, 고용주나 개인이 부담하든 현재의 무보험자 모두가 신규 가입자가 된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병력근거 가입거부나 중병 발병시 보험가입 취소등을 금지하는 개혁안의 새 규정에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커스안은 보험회사의 기대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보험가입 의무화 규정이 약화되었다. 가입안할 경우 벌금이 원래의 3,800달러에서 최고 750달러로 대폭 낮추어졌다. 새 고객은 애초 예상의 절반인 2,500만명 정도에 그칠 듯 한데 그것도 자칫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무보험자로 계속 남고 늙고 병든 사람만 새로 가입하게 될 판이다. 개혁안이 통과되면 무보험으로 지내다 병이 든 후에 가입을 신청해도 거부할 수 없어진다. 한마디로 수지타산이 안 맞게 된 것이다.
보험업계 보고서는 바커스안이 시행되면 현재 가족당 1년 평균 1만2,300달러의 보험료가 2만5,900달러로 오른다고 ‘위협’하고 있다. 13일부터는 개혁안의 메디케어 삭감에 따른 노인혜택 축소를 경고하는 TV광고도 시작했다. 아무런 사전 통보를 못받은 백악관은 불쾌해 했고 진보진영은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다’고 비난했으며 보수진영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냐’며 혀를 찼다.
가장 강력한 반격에 나선 것은 의회 민주당 지도부다. 분노한 의원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오류투성이 왜곡 보고서’ 자체를 폄하했고 1945년부터 보험업계에 대한 연방 반트러스트법 적용을 면제해준 ‘맥카란-퍼거슨법’ 폐지를 다짐하며 즉각 청문회를 개최했다.
재정위 표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보험업계의 기습작전에 민주당이 강력 대응하는 것은 ‘공포작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100년 가깝게 계속 추진되어온 개혁안이 번번이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여론의 불안이었다. 이번 개혁안 역시 ‘보통 미국인에게 어떤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대답이 나와 있지 않다. 보험업계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한다면 자칫 불안이 확산될 수도 있다.
물론 보험업계의 선전포고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는 있지만 개혁안이 성사되기까지는 오바마의 말처럼 아직 ‘갈 길이 멀다.’ 10월말로 목표한 상하원 각각의 본회의 표결 이전에 민주당 지도부는 공화당 표 하나라도 더 확보하는 동시에 행여 이탈할 까, 당내 중도파도 단속해야 한다. 게다가 보험업계가 겨냥하는 것도 최종내용이 결정될 상하양원 본회의 표결일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백악관과 보험업계가 팽팽히 대결하며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는 한 편에선 흥미로운 제안도 나왔다 : 보험업계의 막판 기습을 자살골로 만들어주자 - 자기들 입맛에 안맞는 개혁안이 통과되면 보험료를 인상하겠다는 보험업계의 ‘협박’은 시장을 독점한 절대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더 이상 이런 오만을 허용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정부주도의 공공보험 퍼블릭 옵션이다, 보다 낮은 가격으로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쟁다운 경쟁을 시키기 위해서다…
여론의 77%가 퍼블릭 옵션을 지지한다. 소비자에게 민간보험과 공공보험의 선택권을 준다면 보험료 인상을 걱정하는 여론의 불안은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보험업계의 막판기습을 자살골 삼아서라도 재정위에서 배제된 퍼블릭 옵션이 개혁안 막판조정을 통해 다시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루이스가 그처럼 원했던 선택권을 주는 것 아닌가.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