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할리웃보울에서 열린 두다멜 환영 콘서트에 다녀왔고, 어제 밤에는 디즈니 홀에서 개최된 두다멜 취임축하 갈라 콘서트에 참석했으며, 오늘 밤에는 이번 시즌 첫 프로그램인 진은숙과 말러의 음악을 듣기 위해 또 디즈니홀에 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재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첫발을 딛는 역사적인 순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것이다.
두다멜의 LA필 첫 연주프로그램이 한인 작곡가의 곡이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격스런 일인가.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것 말고도 올해 주류 문화계에서 한인과 관련된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문화부 데스크로서 숨이 턱에 닿을 지경이었다.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현대작가 12인전과 한국관의 확장재개관 때문에 지난 몇 달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뛴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석달이나 계속된 전시기간 동안 라크마의 관련 프로그램들만도 서도호, 양혜규, 장영혜중공업 등 작가와의 대화에 이어 권미원 UCLA교수의 강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강의, 건축가 황두진의 한옥세미나가 열렸으니 주류문화계에서 올해처럼 한국관련 행사가 많았던 적은 없을 것이다.
그 뿐인가. 지난 7월 아메리칸 발레 디어터(ABT)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발레리나 서희가 줄리엣 역을 맡아 열연했고, 9월에는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이 할리웃 보울 무대에 데뷔했으며, 라크마 현대미술부에 크리스틴 Y 김씨가 큐레이터로 부임하는 등 실로 다양한 장르에서 한인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동안 보여준 LA한국문화원(원장 김재원)의 자세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전시회, 강연, 콘서트, 공연이 열리는 동안 행사장에서 한국문화원 관계자를 만난 적은 한번도 없고, 어디에도 한국문화원이 관련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라크마 한국전 준비가 한창이던 올해 초만 해도 문화원에서는 이와 연계한 특별전시를 로컬 갤러리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라크마 현대작가전은 대형설치와 비디오 위주였으므로 다른 갤러리들이 회화 쪽의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것은 좋은 시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계획은 말만 오가다가 새로 문화원장이 부임해 온 후 유야무야 사라졌다.
그렇다고 문화원이 로컬 문화계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김재원 원장이 지난 2월 부임한 이래 타운에서 있었던 음악회, 전시회, 문학강연, 출판기념회, 어느 곳에서도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고, 그와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다는 단체장들이 수두룩하다.
장태숙 한국문인협회 회장, 이정아 수필문학가협회 회장, 김철이 남가주한인음악가협회 회장은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지난번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조찬모임을 가졌을 때도 “갑자기 문화원에서 나오라고 해서 갔을 뿐 누가 문화원장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네 아쉬울 때만 부르잖아요”가 공통적인 조소였다.
그동안 로컬 문화계를 홀대한다는 이곳 예술인들의 볼멘소리에 역대 문화원장들의 한결같은 변명은 “문화원의 업무는 한인문화계 지원이 아니라 주류사회 문화홍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류사회가 한국문화를 정신없이 소개하고 있는 동안, 숟가락만 얹어놓아도 생색낼 수 있는 잔치판에 도무지 끼어들 생각조차 않고 있으니 그 깊은 속내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하긴 지난 30년동안 10여명의 문화원장이 왔다갔지만 제대로 일을 했거나 로컬 문화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은 몇명 되지 않는다. 문화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와서 3년을 놀다가는 일도 적지 않았고, 그저 대과없이 잘 지내다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이곳 인사들과 열심히 돌아가며 밥을 먹다가 떠날 때가 되면 좋은 보직을 찾아 관련부처에 줄을 대느라 문화홍보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일은 안 해도 하는 시늉이라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늉도 없이 조용하니 이거 왠지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3년 임기 중 8개월이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셈인데, 새로운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기존의 프로그램마저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불안하고 걱정된다.
이런 식이면 한국문화원의 정체성과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민속공예품이나 전시하고 초등학생들 견학이나 받는 기관이라면 한두명 직원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정숙희 / 특집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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