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 장면을 담은 비디오의 소유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일까. 정부소유 모하비 사막에 세워진 참전추모 십자가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일까.
대기업의 정치기부금 제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 강도 및 강간을 저지른 13살 소년에 대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헌법이 금지한 ‘잔인하고 이례적인 형벌’에 해당될 수 있을까…3개월의 긴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이번 주부터 새 회기를 시작한 연방대법원이 내년 6월말까지 우리에게 답해줄 55개 질문 중 몇 가지다. 대부분 격렬하게 논쟁 중인 이슈들이다.
궁금한 것은 케이스들만이 아니다. 새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는 대법원에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인가, 내년 4월이면 90세가 될 존 폴 스티븐스는 이번 회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인가, ‘베테란 리버럴’들이 물러가고 있는 대법원의 보수화는 얼마나 가속화될 것인가.
소토마요의 데뷔전은 활기차게 치러졌다고 LA타임스는 전한다. 맨하탄 항소법정에서 가장 공격적 판사라는 ‘악명’이 무색치 않게 소토마요는 첫날 개정 1시간만에 무려 36개의 송곳 질문을 퍼부었다. 몇 년동안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던진 질문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법원 출입기자들로부터 ‘베테란 같은 루키’란 평가를 받은 그의 거침없는 행보를 통해 인준청문회에선 감 잡기 힘들었던 대법관 소토마요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 약자의 민권에 공감하는 ‘현명한 라티나’ 성향과 검사출신의 강력한 법집행 시각 중 무엇이 우선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그의 역할은 미디어의 조명을 받긴 하겠지만 주요 케이스의 표결 결과나 대법원의 이념지형에 변화를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에선 이번 2009-2010년 회기를 연방대법원의 중요한 변환기로 예상한다. 변화를 이끌어갈 주역은 소토마요도, 스윙보트 앤소니 케네디도 아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다.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보수화 판결을 이끌어 낼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버츠 대법원은 금년으로 제5기를 맞는다. 9명 대법관 중 가장 젊고 판사경력도 가장 짧지만 친근한 매너와 조용한 자신감, 견고한 지성으로 무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그는 이미 대법원의 통제권을 확실하게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취임후 4년동안 로버츠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으로 뒤이어 입성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전폭 지지를 받으며 ‘보수의 씨앗’을 꾸준히 뿌려왔다. 극우보수로의 과격한 변화를 자제하고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보수의 기반을 다졌다. 신중하고 ‘소극적 보수’로 첫 몇해 대법원 적응기를 무사히 마친 그는 이제 더 이상 ‘신참’이 아니다. 대법원의 이념대립에서 보다 대담한 행보를 보이는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로버츠 대법원의 ‘우향우’ 행진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가늠할 케이스는 이번회기에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이고, 그래서 논쟁 심한 케이스는 총기소유권과 선거자금법 관련케이스다.
로버츠의 과감한 입장 표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9월 휴회 중 특별회기까지 소집, 선거자금 케이스에 대한 히어링을 개최했다. 핵심쟁점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기업의 권리다. 지난 대선 중 힐러리 클린턴 비방 필름을 제작한 보수적 단체와 이 필름의 방영을 막은 연방선거위(FEC)간의 소송케이스다. FEC는 캠페인 중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선전 자금지출을 금지한 2002년 선거자금법을 근거로 정당하다 주장했고 보수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정부의 검열이라고 맞섰다. ‘특수이해 집단인 단체와 대기업은 개인과 다르다, 그들의 정치관련 권리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의 주장이고 “FEC 손에 수정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보수의 반박이다.
내년 1월 히어링을 가질 총기소유권 관련은 아마도 가장 시끄럽고 뜨거운 논쟁을 부를 것이다. 이미 지난 회기에서 대법원이 ‘수정헌법 제2조는 개인의 총기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워싱턴DC의 권총소지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 보수가 1차 승리를 거둔 이슈다. 이번엔 시카고의 총기규제법이 도마에 올랐는데 만약 이번에도 대법원 보수파의 승리로 위헌 판결이 내려진다면 미 전국의 총기규제 관련 주법 및 시 조례들을 겨냥한 소송사태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2006년 선거자금 케이스에서 판례번복을 꺼리며 보수와 손잡기를 거부했던 로버츠와 얼리토가 이번엔 앞장 서 보수의 입장을 강변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잔뜩 기울 대법원의 내일을 예보한다. 정부역할을 대폭 확대하며 야심찬 어젠다를 추진하는 민주당 대통령과 리버럴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 그리고 노골적 보수화로 치달으며 맞설 대법원 - 이 삼권분립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 대법원 금년회기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할 듯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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