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998년 소위 김일성 헌법을 공포한 후 11년 만에 지난 4월 비공개로 헌법을 개정한 것이 이제 공개된 것이다.
북한의 헌법 역사상 처음으로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 (제 8조)”는 구절을 삽입한 것이라든지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한 것 (옛 헌법 제 29, 40, 43조) 등이 눈에 얼른 뜨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원수임을 명시한 점 (제 100조 ~ 105조); 국방위원회를 국가의 최고 통치기관으로 격상한 점 (제 106조); 주권 소재의 주체로서 “군인”을 추가한 점 (제 4조); 그리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은 점 (제 3조) 이다.
이 중 첫 번째 사항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수령이라는 칭호와 국가주석이라는 직함을 장악하지 않은 채 경애하는 지도자 또는 장군님이라는 칭호 아래에서 실질상으로 이미 북한의 국가원수 역할을 해온 터라 과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세 가지 사항들은 비록 그 동안의 북한 정권의 발자취를 볼 때 전혀 예상치 못 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놀라움과 우려를 가져온다.
우선 그 세가지 사항들이 한결같이 군대를 나라의 최고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북한의 주권은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인들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군이 국민의 일부가 아니라 그로부터 독립된 조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아가 이제 북한의 최고 통치기관은 의회 또는 행정부가 아니고 국방위원회다.
소위 선군사상(先軍思想) 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군사를 모든 것에 앞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선군이라는 개념은 선군 후로(先軍 後勞) 라는 용어를 통해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노동 인민보다 군인들을 먼저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심각한 식량난을 포함하여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당시 상당히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 체제의 존속 여부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선군의 개념은 곧 선군정치라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몇 년 후 선군사상이라는 용어로 발전하였다. 2004년에 이르러서는 “선군사상 일색화”라는 운동이 시작된다. 전 국민의 사상을 선군사상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다.
그 실체가 어떻든 간에 모든 근대국가는 주권재민의 원칙 아래에서 존재의 정당성을 찾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국가에서 군부는 국민과 국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이념이 여러 공산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별났던 것은 그들의 주체사상에서는 인민대중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파악하고 그러한 생명체의 핵 또는 뇌수로서 “수령”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 바뀐 북한 헌법에 의하면 군이 인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군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왜냐 하면 혁명투쟁의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혁명투쟁을 위하여 존재한다.) 주체가 이제는 근로인민이 아니고 군대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밝혀야 할 것은 옛 헌법이 군의 사명을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는 데 있다 (제 59조)”라고 규정했었던 것에 반해, 새 헌법은 “혁명의 수뇌부를 보위하는 데 있다”로 바꾼 것이다. 혁명의 수뇌부란 곧 김정일 위원장을 말한다.
세계 역사 상 이토록 극명하게 군국주의를 표명한 나라가 몇이나 있을까 의심된다. 2차대전 때의 일본과 독일의 군국주의도 아마 이에 미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군을 지상최고의 가치로 삼을 때마다 그 국가는 얼마 동안의 선명한 군사적 성공 후에 곧 이어 패망하곤 했다. 문제는 이러한 군국주의 국가는 그 흥성과 패망의 과정에서 자신의 국민과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가 과연 그러한 군국주의의 불행한 전철을 따라 갈지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김철회 / 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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