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조부모의 날 수기 공모전 할아버지 부문 당선작
우리 가족은 모두 6명이다.
우리 내외는 보이드(Boyds, MD)에 있는 콘도미니움에, 아들 식구는 약 8분거리의 주택에 살고 있다.
20년전 이민와서 하와이에서 10년, 콜로라도에서 8년을 살다 은퇴후 주위의 만류는 물론 수많은 갈등끝에 당시 9살된 손녀 해나와 3살된 개구장이 손자 유진이를 돌보기위해서 이곳 아들곁으로 온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손자를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것 (취미나 하고싶은 것들)을 다 버리고 “오로지 손자만을 위해서”라는 각오를 다짐했다. 젊었을때 사업이라는 핑계로 자주 집을 비우고 그래서 자식에게 못다한 부정(父情)을 대신 손자에게 다 부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지난 3년 그리고 지금, 나는 생애 최고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손자와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70평생 처음 느껴 보는 기분이다. 다들 바보같은 영감이라고 흉을 보아도 좋다(아니 사실 바보지만) 나는 행복하니까. 행복이 별건가? 이게 바로 행복이지.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손녀를 등교시키고 나면 기저귀를 하고 뛰어 다니는 3살된 “유진”이는 바로 내 차지. 할머니는 주로 부엌살림 도우느라 손자와 있는 시간이 적고 유진이 역시 할아버지를 많이 따르기 때문에 항상 나와 같이 논다.
이 시간이 정말 즐겁다.
기저귀를 갈 시간이다. 색깔도 좋고 냄새도 향기(?)롭다. 손에 묻어도 마치 금덩어리를 만지는 기분이랄까? 기저귀 갈고 엉덩이를 씻어주는 기분 또한 즐겁다. 통통한 엉덩이 찰싹 찰싹 때려주고 싶다. 아무도 이 기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기저귀도 졸업하고 4살이 지나고 5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많이 자라고 제법 철도 든것 같다. 어릴때와는 달리 또 다른 매력이 나를 사로잡는다. 할아버지의 존재를 좀 아는것도 같고, 더욱 더 따르는 것이 너무 귀엽고 대견스럽다.
매일 아침 7시면 아들집으로 출근한다. 그런 나를 이웃에서는 ‘기동타격대’라 부른다. 주말에는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거 큰일이 아닌가! 손자녀석이 보고 싶어 온갖 핑계를 만들어 손자 보러 가려고 하면, 집사람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모처럼 저희들 식구끼리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데 불편하게 영감이 왜 가요!”
맞는 말이다. 거기다 또 한마디 덧붙이는 말, “나한테 그렇게 신경 좀 써 주지...”
그러고보니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젊었을땐 사업한다고 외면아닌 외면을 했고, 늙어선 손자보느라 정신없고...
정말 미안하다. 그렇지만 손자 못보게 말리는 집사람이 마치 “마귀 할멈” 같이 보인다. 또 미안하네.
주중 매일 3시면 손자녀석 데리러 학교엘 간다.
차에 타자 마자 “할아버지 뭐 가지고 왔어?”라 묻는다. 항상 간단한 스넥종류와 물을 준비해야 가는데, 가끔 준비하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손자녀석은 어김없이 “할아버지 바보!” 라고 한다.
한여름엔 냉동시킨 물을 가져가서 적당히 녹아야만 “좋아!” 라는 칭찬(?)을 듣지, 조금만 미지근해도 “할아버지, 바보!”란다.
도대체 바보란 뜻이나 아는건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는지 알수 없지만 하여튼 할아버지는 손자 앞에서 바보가 된다. 그래도 그런 손자가 귀엽기만 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손자라서가 아니라 이놈은 위기상황을 잘 빠져나가는 지혜(?)와 영리함이 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글학교 선생님은 유진이 한테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한다. 공부시간에 장난치거나 엉뚱한 짓을 해서 야단치려고하면 눈웃음을 살살치며 합당한 이유와 애교를 떨어 도저히 야단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여튼 재치는 좀 있는 놈이다.
“할아버지 바보”란 소리를 연거푸 들으며 자이언트 수퍼마켓 앞을 지날때, 갑자기 아주 급한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 유진이 피피!”라고 외친다. 할수없이 수퍼마켓에 차를 세우고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 유진이는 화장실에는 안가고 스넥코너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화장실에 안가고 뭐해?”라고 물으면 “이제 안가도 돼. 할아버지가 먹을 것 안 가지고 왔으니까 이거 사야돼!” 그리고는 감자칩이나 껌을 집는다. 기가 찰 노릇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늘은 속았지만 다음엔 어림없다고 다짐하지만 매번 당한다. 그래도 즐겁다.
6살이 되면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모든 것이 또 많이 변했다.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취미도, 또 행동도 변한것 같다. 혼자 시간을 보낼 줄도 알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밖에 나갈땐 꼭 할아버지와 같이였는데, 이젠 혼자 마음대로 나가서 논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안한다. 등하교때 스쿨버스를 이용해서인지 “할아버지 바보”란 소릴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허전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지루하고 따분하다.
앞으로 더할 것이다. 7살이 되고, 8살이 넘으면 할아버진 완전 외계인이 되고, 의사 소통도 잘 안되는 귀찮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건강하게 잘 자라서 훗날 나를 무척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것만을 기억해 주었으면....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