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신데렐라,’ ‘세계의 공주,’ ‘인류의 연인,’ 그리고 ‘동화 속의 가인’으로 세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영국의 다이아나 공주가 파리에서 이집트계 출신의 연인과 사랑의 미로를 찾아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횡사했을 때, 그 비극의 전말을 대서양 양안(兩岸)의 전자매체와 인쇄매체를 총망라한 구미 언론이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조명을 하던 ‘언론의 대란’을 경험한 게 엊그제 같은 데 이제 이 세기적 사건이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녀의 참사는 그 후 배후 음모설까지 나오는 등 세인들의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으나, 벌써 12년의 세월이 축적한 장구한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의 기억 저변에 침전해버렸지만, 그 진위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은 사실 그 자체로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질투의 화살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하필 다이아나인가? 그녀는 진솔한 삶을 찾아 대영제국 황실의 새장을 뛰쳐나온 현대판 ‘노라’이었다. 트로이의 포로가 된 헬렌이 이오니아 섬으로 귀환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터진 불운의 타이밍 또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다이아나는 공주라는 신분이 그녀에게 확보해 준 화려하고 장엄한 분장(粉粧)의 베일을 벗어 던지고 낮은 신분의 범인(凡人)들의 고행을 같이 체험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특히 그녀는 오랫동안 나병 환자, 에이즈 환자, 장애자 등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폈으며, 지뢰사용 금지를 위한 국제적 캠페인에 앞장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그녀의 장례대열을 따르며 애도하던 군중은 인종과 피부색, 그리고 계급과 종교를 초월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세인의 사랑은 공주라는 신분에 대한 외경심이라기보다는 자애로운 성녀에 대한 연모와 같은 플라토닉한 정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었다. 다이아나는 이제 서양문명권에서 수천 년 차지해 온 헬렌의 자리를 밀치고 구원(久遠)의 여상으로 전설화되고 있다.
그녀의 비극을 문화사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그것은 현대 문명의 특징인 선정주의가 저지른 살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다이아나 공주의 참사는 명망(名望)의 광란으로 상징되는 현대적 우상숭배에 그 원인이 있으며 ‘조형적 가치’라는 허상을 쫓는 군중들의 간접효과에 의한 카타르시스 욕구가 이 살인의 공범이었던 것이다.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영국 황실에 간택되어 현대의 군주제도를 위한 퍼블리시티 곡예의 소용돌이에서 세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결국 그 곡예의 돌풍에 휘말려 불귀의 객이 된 다이아나는 신탁(神託)이라는 중세기의 반문명의 유물이 현대에 안주하고 있는 영국 입헌군주제의 가장 비극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영국의 황실은 계급과 종교와 형식에 의해 순화된 영국인의 소시민주의가 대리만족을 위해 유지하고 있는 아서 왕의 카멜롯 유적(遺跡)의 전시장일 따름이다. 다이아나의 짧은 생애는 한동안 이 앙증스런 잔해(殘骸)의 미화작업에 이용됐고, 그녀의 말년은 화려한 베일에 가린 윈저가의 치부를 폭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니 그녀의 비운은 다이아나의 의도와는 전혀 별도로 진행된 이 후기 작업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개연성을 전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영국인들을 물론 세계의 TV 관객은 평민이 왕자와 결혼하는 지위의 상승에서 카타르시스를, 그리고 그녀의 환상적 미모에서 나르시스를 찾았다. 그녀의 혼외정사, 파경, 그리고 뒤이은 ‘자유’에서 현대의 카메롯을 무대로 연출되는 대 스펙터클을 관람하는 지구촌 전역에 마련된 객석의 열기가 뜨겁게 닳아 올랐다.
이것은 분명히 우상을 쫓는 현대인의 집단 히스테리가 연출하는 문화적 포말(泡沫)현상이다. 신화를 잃은 현대인들의 이 광적인 집단 히스테리는 일찍이 나치즘을 낳았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현란한 카니발로 분출되었다.
그래서 최근 가시적 흥미에 편승하고 있는 언론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언론이 사회정의 수호, 진실 추적, 비리 고발 등 그 본연의 사명을 외면하고 명망가의 사생활을 상품으로 매도하는 일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질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현대판 신데렐라의 비극적 퇴장(退場)은 드라마의 끝이 아니라 허상을 쫓아온 현대인이 의식혁명으로 가는 대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면 한다. Editor.USNews@gmail.com
이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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