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채무자 압박하며 돈 받아내는 건 파키스탄 청년들
어르고, 달래다 때론 가정불화 하소연에 상담까지
미국의 불황 깊어질수록 파키스탄 콜센터는 호황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일요일 저녁 8시, 그러나 콜렉션 담당원 샤룬 허문은 미국의 시간에 맞춰서 생활한다. 헤드폰을 끼고 두 다리를 책상위에 올려놓은 그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거주하는 채무자에게 전화를 건다.
“헬로우, 맴, 하우 유 두잉 투데이?” 그는 상당히 익숙한 미국식 액센트로 인사를 건넨다. “제 이름은 제임스 해롤드입니다. 그리고 댁의 채무액은 1만1,000달러입니다”
전화선 저쪽의 당황한 기미는 역력하게 전해진다. 잠시 숨을 고르는 침묵, 그리고는 갖가지 변명이 쏟아진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일 거예요. 우리 남편의 ID를 도둑 맞았거든요”
몇 분 동안 변명을 듣다가 허문은 전화기를 터치스톤 콜센터의 수퍼바이저인 카시프 시디퀴에게 넘겨준다. 몇 년의 경력을 가진 시디퀴에겐 귀가 닳도록 들어 온 변명들이다. 그는 사납게 굴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몇 초 만에 위협적일 만큼 압박을 가한다.
“그래요? ID를 도둑 맞았다구요? 신분도용을 당했다는 경찰 리포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돈을 빌려 쓰지 않았다는 진술서가 필요한데, 물론 공증을 받으셔야 합니다. 자, 그럼 지금 경찰에 전화를 걸어 컨퍼런스 콜을 합시다”
찰칵 -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진다.
빚더미에 치여 허덕이는 미국인들은 그들의 채무 독촉 악몽의 근원지가 탈레반 반군으로 불안한 중동의 어느 국가라는 것을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 미국의 불황이 깊어지고, 실직과 주택모기지 연체가 늘어나는 데 따라 장거리 빚 독촉이 파키스탄에서는 한창 뜨는 성장산업이 되고 있다.
전화를 끊어버린 텍사스의 채무자에 대해 터치스톤 직원들은 다음 단계 작업에 들어간다. 또 전화를 하지만 리턴콜은 물론 오지 않는다. 그러면 추적 소프트웨어와 대출 서류에 기록된 사항들에서 정보를 입수, 이웃과 동료, 친척들에게 채무자와 연락을 부탁하는 전화 메시지를 남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채무자는 지친 음성으로 돈을 갚는 플랜에 동의하게 마련이다.
달라스에 본부를 둔 회사의 파키스탄 지부인 터치스톤은 소비자대출회사들의 빚 독촉을 담당하는데 전화를 하는 콜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청년들이다.
독촉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의 반응은 보통 충격과 부인이다. 만약 지나치게 협조적으로 나오며 태연한 음성으로 돈을 다 갚겠다고 대답하면 아마도 ‘프로’ 채무자일 것이다.
‘모르겠다’를 연발하는 기억상실증 채무자와의 싸움에선 정보가 무기다. “당신이 어느 날 얼마를 썼는지 기록을 갖고 있어요. 당신이 사인한 계산서도 다 있고, 당신 수입이 얼마인지도 압니다” 일부 채무자는 영어를 모르는 척 하기도 한다. “하비야 에스파뇰~” 이런 속임수엔 미국거주 경험이 있는 직원이 당장 스패니쉬로 익숙하게 대꾸해준다.
결국 코너로 몰린 채무자들이 호소하는 것은 관용이다. 돈을 하나도 못 받는 것보다는 얼마라도 받는 것이 결국 이익이니까 수금원들은 채무액을 깎아주고 분할 변제할 플랜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전화를 받는 상당수의 채무자들은 두려워하고, 절박한 상태이며 외로운 사람들이다. 마치 수금원들이 정신과 의사나 목사라도 되는 듯 사연을 털어놓는 채무자들도 있다. “온갖 고백을 다 듣습니다. 가정문제에서 시작하지요. 노인들은 찾아오지 않는 아들에 대해 호소하는데 그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 같았어요”라고 구람 라바니는 말한다.
직원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너무 동정적이 되어선 안되지요. 테레사 수녀라면 이 일을 못하니까요”라고 샬림 야쿠브는 결연한 음성으로 말한다.
이들은 1주 2회 전략 모임을 통해 테크닉 개발의 도움을 받는다. 채무자의 입장설명을 경청하면서 채무자에게 책임감을 호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된다. 매서추세츠에서 몇 년 살았던 라자 메부브는 전화를 받은 채권자가 지금 저녁식사중이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대자 “아, 오늘 메뉴는 뭡니까? 옥수수도 있나요?”라고 곧바로 받아쳤다. 채권자의 그날 메뉴는 실제로 햄과 옥수수였고 “나도 햄 좋아하는데”란 거짓말(무슬림인 메부브는 돼지고기를 안먹는다)로 그날의 대화는 원만하게 시작될 수 있었다.
협조를 거부하는 막무가내 채무자도 있다. “그러면 파워게임이 됩니다”라고 바툴은 말한다. 자신은 지금 막 형무소에서 나왔으며 무직자라고 뻗대는 채권자에게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 “형무소로 되돌아가고 싶습니까?”
파키스탄의 콜센터 비즈니스는 이웃 인도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다. 델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대기업은 정세불안을 이유로 파키스탄에서의 비즈니스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인들은 자신들의 영어 액센트가 인도인들보다 덜하고 고객 서비스도 월등하다고 자부한다. 어쨌든 경기불황이 멈추지 않는 한 빚 독촉은 늘어날 테니 파키스탄의 콜센터 성장세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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