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미국은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공화)의 폭탄선언으로 공산주의 소탕 광풍에 휘말린다. “미국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국내외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주변 약소국을 야금야금 잠식하며 사회주의 거대 집단으로 성장해버린 소련에 대한 두려움에 매카시에게 막강한 힘을 부여한다.
수만 여명이 공산주의자로 또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감금되고 딸이 부모를 고발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속출하는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하지만 4년 후 매카시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나자 상원은 그를 견책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소위 ‘매카시즘’으로 대변됐던 미국 내 ‘적색 공포’(red scare)다.
이보다 40여년 앞선 1919년에도 미국은 적색 공포에 휩싸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사회 불안정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냈다. 미국인들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붉은 세력의 음모에 파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것이다. 때마침 시애틀 총파업, 보스턴 폭동 등 일련의 사태가 이들의 공포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급기야 연방 법무장관과 법무부 소속 검사가 2년 동안 사회주의, 급진주의, 노동조합주의자등 1만여 명을 체포하는 검거 선풍을 벌였다. 대부분 무혐의 풀려난다.
흑인 대통령을 맞은 미국이 해묵은 사회주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에 오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 추진으로 그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도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서 ‘조 배관공’에 이르기까지의 반대파들로부터 사회주의자로 몰려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미국의 5%에 해당하는 부유층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 쓴다는 오바마가 미국인들에게는 사회주의자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1992년 대선 때 아버지 부시는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학생시절 모스코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사상 논쟁을 벌였었고 2004년 대선 때 아들 부시는 니카라과 좌익 대통령과 찍은 존 케리 후보의 사진을 들고 나와 사회주의자로 몰아세운 적도 있었다.
연방 정부의 의료개혁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0년 전부터 전 국민 의료보험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또는 이익 집단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됐다.
1902~1909년 대통령에 재직했던 시오도로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대통령에 재차 도전하면서 국민 건강보험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패배했고 1930년대 대공황 무렵에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또 한 차례 시도하지만 의학협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0년 내 트루먼 대통령이 국가 건강보험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가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흑인 권익 향상을 원치 않는 인종주의자들의 반대가 겹쳐 또 좌절됐다. 70년대 닉슨 대통령, 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의 시도 역시 물거품이 됐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을 단지 유산자의 재산을 빼앗아 무산자에게 나누어주는 정부 주도 분배식 사회주의자에 의한 시도로 몰아붙이기에는 미국의 의료현실이 다급해 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의료보험비에 병력자 가입 거부, 실직자의 무보험 전락, 의료사기등등. 이대로 둔다면 10년 이내 가구당 보험료가 2만5,000달러에 달한다는 끔직한 보고서도 발표됐다.
지금이 개혁의 메스가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적자에 시달리는데다가 금융위기에 이은 불황의 여파로 곳곳에서 직장을 잃고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 널려 있는 실정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세금인상이 불가피 할 것이고 또 누적되는 적자를 메우려면 국민의 혈세 충당이 당연할 것이며 더 이상의 지출은 국가를 망친다는 우려가 반개혁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반대파들의 거센 공세를 어떻게 뛰어넘느냐에 1세기동안 계속돼온 미국 의료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김정섭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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