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지붕을 토닥이는 빗소리에 잠이 깨졌다. 가을비다. 가을비는 소란스럽지 않아 좋다. 자분자분, 옛이야기 나누듯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어디서 들려오는지 긴 기적소리가 들린다. 어디로 가는 기차일까.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이국의 기차는 모든 기차들이 그렇듯 조금은 비극적인 음색의 기적소리를 남긴 채 사라지고 있다.
가을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소리를 듣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고국을 떠나 사는 삶, 자의에 의한 디아스포라가 되어버린 이민자들의 삶에 고향이란 감성대명사가 슬며시 고개를 드는 계절이 왔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한사람 로니 빅스, 영국 범죄 사상 세기에 남을 기록을 세웠던 사람이었던 그는 강도 열네 명과 공모, 사제신호기로 달리던 열차를 세워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돈인 260만 파운드(당시 한화로도 50억)를 강탈한다. 주범이었던 그는 체포되었지만 30년형을 선고받은 뒤 복역 중에 탈옥, 이곳저곳 도피생활을 하다가 영국과 범죄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브라질로 도망하는데 성공, 거기서 아이까지 낳고 새생활을 시작한다. 영화 같은 과거 때문에 유명인사가 되어 이곳저곳 초청되고 TV에 출연하여 영국사법당국을 조롱하는 말도 서슴지 않던 그가 칠십세가 넘어서 갑자기 자수를 한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런던공항에 도착한 그에게 터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와 질문공세를 향해 그가 던진 한마디가 유명하다. “죽기 전에 내 고향 리퍼플의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었소,”
강력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는 영국법에 의해 재수감되어 28년이나 남은 형기를 치르고 있던 중 그의 병이 깊어졌고 가석방 여부를 운운하는 소식을 지난 여름에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분명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흉악범임에 틀림없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고향이란 단어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처럼 컸던 그의 죄명을 한순간 유예시키게 만든다.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 리퍼플의 허름한 술집은 누구의 가슴에나 하나씩 갖고 있을 그리움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 내게도 가을이 되면 그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문짝들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제멋대로 열리는 기척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기적소리라도 듣는 날이면 고향으로 돌아가 기차를 타보고 싶어진다. 가능하면 어머니의 손바느질처럼 그 느린 홈질처럼 떠나고 도착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삼등열차를 다시 한 번 타보고 싶다. 옆구리 터진 보퉁이들이 선반에 얹혀져 있고 더러는 잠들고 더러는 창밖의 비어져가는 가을 풍경에 시선을 둔 고단한 사람들을 싣고 달리던 기차의 이름은 비둘기호였던가 무궁화호였던가.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 없어도 다정한 누이처럼 등을 내놓고 기다려주던 기차는 지금도 달리고 있을까.
내 기억 속의 삼등열차는 이제 다시 타볼 수 없는 기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속도의 혁명이라 불리우는 초고속 기차가 도입되면서 없어진 기차들도 많고 정지된 시간 속으로 사라진 간이역들도 많다고 한다. 그 중 몇몇 역은 문화재로 명명되기도 했다지만 아마도 그 간이역들 역시 문화재란 화려한 이름보다 분주하게 사람들을 태워보내고 맞이하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기차가 도착하고 하얀 목화꽃 터지듯 역사로 밀려오는 사람들을 팔 벌려 맞이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지금도 초라한 역사의 창 밑에 백일홍 몇 포기를 머리핀처럼 피워놓고 멈추지 않고 지나는 초고속기차들을 바라보며 추억을 반추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잊혀지는 간이역들…… 세상은 변하고 변화와 속도 혹은 과속과 질주를 즐기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편리함 뒤에서 사라지는 느린 걸음의 여유나 낭만이 아쉽기도 하다.
가을이면 유독 한국이 그리운 이유 중의 한 가지는 가을꽃 때문일 것이다. 인공적으로 심지 않아도 산야에 지천이었던 가을꽃들을 미국에선 많이 보지 못하고 살았다. 숲이 너무 깊어 해가 들지 않는 까닭일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너무 일의 숲에 갇혀 살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가을꽃들은 북쪽지방의 식물들이 빙하를 따라 떠내려 와 왔다가 얼음이 녹은 뒤에도 죽지 않고 남아 있던 것들이 그대로 환경에 적응하게 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한다. 코스모스나 구절초, 또 가을이면 지천으로 피는 쑥부쟁이나 들국화 같은 꽃들의 키가 큰 이유는 자라는 기간이 그만큼 길기 때문이고 꽃다발처럼 무리지어 피는 이유는 개체수가 모자라는 가을 곤충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향기를 모으는 수단이라고 한다. 가늘고 큰 키는 비바람에 쉽게 부러질 수도 있는 약점인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가을꽃들의 몸부림인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 키를 키운 그네들의 키가 우리의 눈엔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것이다.
빙하에 떠밀려 살던 땅을 떠나와 낮선 환경에 적응하며 늦게서야 꽃을 피우는 가을꽃들, 척박한 땅이나 돌 틈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일조량이 많은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꽃을 피워내는 그 가을꽃들과 고국을 떠나와 사는 디아스포라의 삶은 닮은꼴이다. 고국을 떠나온 우리들에게도 긴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틈새 땅은 척박하기 마련 아닌가.
가을꽃들은 꽃 색깔이 엷고 가는 몸체에 비해 꽃을 많이 피우는 편이다. 어린 윗 순이 잘리면 두개의 곁가지로 살아남는 꽃의 특성을 이용해 일부러 순 따기를 해주면 몇 곱절의 가지로 흡사 별처럼 떠다니는 꽃무리를 만드는 코스모스의 생존력, 스스로 밑둥에 숱한 곁가지를 쳐서 수백 송이 꽃의 무게를 견디느라 허리가 휘고 서로 엉켜 피기도 하는 보라색 쑥부쟁이의 치열함 같은 것이 가을꽃들의 생존방식이다. 가을꽃 중에는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환경을 견디느라 추운 밤에는 꽃잎을 닫아 씨방을 보호하면서 된서리가 내릴 때까지 견디는 꽃들이 많다. 꽃 대궁에 하얀 서릿발을 뒤집어쓰고 죽어가면서도 기어이 한 송이의 꽃이라도 더 피우고 한 알의 씨앗이라도 더 얻기 위해 꿋꿋이 견디는 가을꽃들의 삶이 경이롭다.
술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갈 수 있다 했던가. 가을꽃 한 키만도 못한 나의 향기는 내 집의 문턱도 넘지 못할 텐데 속절없는 그리움은 문턱을 넘어 이국의 기차소리에 편승해 길을 나선다. 저 기차는 달리다가 어느 낮선 기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가을꽃 몇 포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꽃집에서도 팔지 않는 그 가을꽃들은 들판에서 생존의 바람으로 흔들려야 더욱 아름다운 법, 가을이면 키만 키우는 내 안의 그리움도 켜켜이 담아 삭히고 나면 향기나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으려나.
흔들리지 않고는 삭히지 않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가을꽃이 가르켜 준 삶의 비밀을 의식의 작은 서랍 한 칸에 적어 넣고 돌아서는 나의 등 뒤로 가랑비에 순하게 젖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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