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상청은 지난 여름부터 장마 예보를 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장마는 그동안 6월 하순에 시작해 7월 중순쯤 끝난다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한반도 기후가 점차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이런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장맛비가 언제 얼마나 쏟아질지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아예 예보 자체를 접은 것이다.
하도 기상 예보가 많이 빗나가 ‘기상중계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기상청으로서는 섣부른 장마 예보가 부를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보자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기상 예보 적중률을 높이겠다며 수십만달러 연봉을 주고 미국의 기상전문가를 간부로 영입하는 등 나름 노력을 쏟고 있지만 얼마나 달라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국 기상청의 굴욕은 실력과 시스템의 문제이지만 한편으로는 날씨가 원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날씨는 이틀 정도까지만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뿐 그 이상을 넘어서면 신뢰할 만한 예측이 힘들다고 기상학자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날씨 예측이 힘든 것은 혼돈과 복합성 때문이다. 뉴욕의 나비 한 마리 날갯짓이 베이징의 날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나비 효과’는 이것을 상징한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에 변화가 생기면서 혼돈의 변수는 더 많아지고 있다. 예수는 “너희가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질타했지만 지금은 날씨 분별조차 갈수록 힘든 일이 되고 있다.
날씨 예측과 꼭 닮은 것이 경기 예측이다. 특히 장기 예측으로 가면 완전 판박이다. 10년 후 경제를 내다보는 장기 예측 콘테스트에서 대기업 CEO들과 청소부들은 거의 같은 능력을 보인 결과도 있다. 지식도 장기 예측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거시경제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까지 말한다.
1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엄습했을 때 극소수의 비관적 학자를 제외하곤 전문가를 자임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낙관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간다는 기관들이 지난 수십 년 간 내놓았던 주요 예측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빗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침체의 시기에는 성장을 얘기했고 성장의 시기에는 침체를 경고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엇박자 예측에 맞춰 춤췄다.
‘탐욕의 시대’에 위험성 높은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유럽의 조그만 나라 시골은행의 도산이 주류 금융시장까지 휘청거리게 할 수 있는 ‘나비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구태의연하면서도 안이한 예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제는 낙관론에 눈이 먼 채 줄달음을 치다 결국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 1년 혹독한 겨울을 지나며 꽁꽁 얼어붙었던 경기가 바닥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표적 비판론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까지도 “세계경제가 일단 멸망은 피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주식시장도 상승세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긍정적 경기 진단과 시장의 움직임은 일단 안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경제를 비이성적 열기에 휩싸이게 했던 것 또한 심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쁜 습관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들은 하지만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국민 세금으로 살아난 후 또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 등은 나쁜 습관으로의 회귀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1년을 맞아 월가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지속적인 금융규제의 의지를 밝혔다. 혼돈을 야기하는 변수를 통제하려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경기가 약간 풀리는 기미가 있다고 고삐를 풀어서는 안 된다.
개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낙관론을 맹신했다가는 또 한번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위험은 여전히 도처에 깔려 있다. 생사를 위협하는 살벌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의심하고 경계할 줄 아는 선조들이었다. 이런 선조들의 유전자를 발동시켜 혹독한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습관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는 지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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