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는 일요일 아침인데도 새벽같이 눈을 떴다. 침대 아래로 놓여있는 노랑색 가방과 코스모스가 그려져 있는 흰 운동화에 눈을 맞추었다. 내일이면 처음으로 그리던 학교에 가는 날이다. 눈을 살짝 감고 떠서 눈망울 축축이 적시면 보이는 것들이 모두 무지개 색깔로 깜짝 변하는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무지개를 걷어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꼼짝 없이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엄마가 느닷없이 미라의 방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엄마가 멈춰 섰을 때 미라의 눈에는 엄마 손에 쥐인 전보통지서가 소리를 내면서 떨고 있었다. 미라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것이 미라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미라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미라를 넘어질듯 안고 조그맣게 흐느끼셨다. “아빠가 전사하셨다는 통지서다.”
미라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노랑색 가방이며 코스모스 운동화 등등이 뒤죽박죽이 되여 미라의 머릿속을 회전했다. 아빠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라진다. 미라는 울지 않았다. 엄마를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이 미라를 냉정하게 했다.
아빠의 유해가 성조기에 덮여서 수송기에서 내려질 때, 알링턴 묘지에 묻힐 때, 엄마는 실신해서 미라의 작은 몸에 기대야만 했다. 이때부터 엄마는 늘 눕기만 하셨다. 엄마가 하시던 샌드위치 가게도 문을 닫았다. 우유를 데우고 소시지를 전기렌지에 구워서 드렸다.
햅쌀밥도 물에 말아서 따끈하게 해서 오이와 도마도와 고추장과 함께 드렸다. 근처 한인교회에서 방문을 와서 위로의 기도와 약간의 밑반찬을 두고 갔다.
미라는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를 즐겁게 하기위해 옆집 고양이를 빌려왔다. 흰 고양이는 주저 없이 엄마의 머리맡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고 엄마를 지켰다. 옆집 아줌마가 시장에 데리고 가서 장을 보아줬다. 돈을 세고 가계부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일찍 읽고 쓰기를 배운 덕분에 한글로도 알아 볼 수 있게 적을 수가 있었다.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와 보조금을 통장에 넣고 저축도 했다.
학교에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배우고 집에서는 엄마가 지켜보는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복습하고, 노래와 무용, 그림그리기를 엄마를 위해 실습을 했다. 엄마는 말없이 방긋 웃기만 하셨다.
어느새 엄마와 단둘이서의 생활은 갑자기 끝이 났다. 미라가 학교 버스에서 내릴 때 집 앞에는 몇 대의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비상등을 키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린이 보호소에서 나왔다는 뚱뚱한 중년여인이 미라를 방으로 안내 했다. 엄마는 침대에 평상시와 다름없이 눈을 감고 계셨다.
뚱뚱한 여인이 앞장을 서서 걸었다. 미라는 머리를 떨구고 그녀를 따랐다. 그녀는 엄마의 유서라고 깨끗한 흰 타자지에 적힌 까맣게 쓰인 용지를 읽으려고 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미라에게 건네주었다. 미라는 눈을 엷게 뜨고 무지개처럼 색갈이 덮여 오는 글을 천천히 읽어갔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미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랑하는 미라야. 내가 어떻게 너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몰라 망설였다. 내가 너를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기가 너무 어렵구나. 아빠도 너를 남기고 나도 너를 떠나야 하니 너무도 가혹한 일이니까. 그저 용서하고 들으렴.
아빠나 엄마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버려져서 각각 다른 고아원에서 자랐지. 아빠는 신문팔이와 학원 청소를 하며 검정고시로 대학을 준비했고 엄마는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학원에서 청소하는 아빠를 만났지. 아무 연고가 없는 우리는 기술을 배워서 미국 이민을 꿈꾸며 아빠는 용접공으로 엄마는 병아리 감별사로 면허를 받고 이민 왔지. 결혼식도 없이 신부님 앞에서 결혼선서를 하고 미국에 와서 모두가 겪는 이민 초기의 고생을 했단다. 그리고 너를 낳았고 너는 영양실조로, 엄마는 예전에 앓았던 폐렴이 도져 아빠는 나와 너를 살리려고 미군에 입대하게 됐고 나는 병을 치료받고 너를 제대로 먹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했지. 그나마 조그마한 가게를 가질 수 있었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뜻이 계셔서 너를 더욱 외롭고 궁핍한 가운데 살게 하셔서 겸허한 마음으로 긍휼을 배우고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끝까지 노력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준비시키려 한다는 것을 믿는단다.
미라야 하나님이 주신 뜻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아빠나 내가 그랬듯이 너도 주신 삶을 그대로 긍정하며 의롭고 용기 있게 살아라. 넓고 크게 생각하여라.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오직 살아야한다. 너에게 남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우리가 바로 너를 사랑 한다는 말을 남길 뿐이다. 미라야 사랑한다. 미안하다.
어느새 뚱뚱한 여인은 미라가 엄마의 유언편지를 읽는 동안 정원이 잘 가꿔진 콜로니얼식 저택 앞에 차를 세웠다. 나이가 지극한 미국 노인 부부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면의 웃음을 띠고. 뚱뚱한 여인이 양부모를 미라에게 소개했다. 미라의 얼굴은 창백해 있었다. 바로 그때 양어머니가 뒤에 숨기고 있던 흰 옆집 고양이를 미라에게 넘겨줬다.
“미라야, 이것이 너의 옆집 사람이 너를 위해 보냈단다.” 양 부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라의 얼굴은 붉어졌고 어여쁜 보조개가 드러나며 고양이를 힘껏 껴안았다. 고양이는 미라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파묻었다. 사랑스럽게.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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