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읽은 개선문이라는 불란서 소설을 감명깊게 얘기해주고 가끔 이미자 노래도 구성지게 잘 부르는 그 여자를 우리는 모두 언니라고 불렀다.
종업원이 넷이나 되는 네일싸롱은 손님도 괜찮게 왔고 가게 분위기도 좋았다. 생각해 보면 그 언니에게 특별한 구석이 있긴 있었다.
네일 싸롱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손님은 자기 발바닥 군살까지 깍으면서 무슨 여왕이나 된것처럼 건방을 떨며 사람 진을 다 뺀다. 언니는 가끔 손톱을 손질할 때 하나 하나 내려다 보고 양양거리는 질 나쁜 손님을 받으면 일을 다 끝내고 얌전하게 돈을 받아 금고속에 넣고 돌아서면서 쌍년! 하고 한마디 하고는 활짝 웃어준다. 참으로 언니다운 것이다. 손님은 한국말을 모르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언니는 언니방식으로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언니가 하루는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가지고 왔다. 너무 놀라 모두 웬일이냐니까 채널 4에서 현장 리포트로 나오는 앵커맨이 다른 주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그런데 언니가 왜? 하고 물었더니 한참있다가 “나 그사람하고 관계했어”하고 언니는 태연하게 너무 태연하게 뜻밖의 고백을 했다. 우리는 순간 너무 깜짝 놀랐다. 언제?!
“나 평소 그남자 얼굴이 나올때마다 TV를 보면서 기분좋게 내 마음대로 상상했어. 앞가슴에 손으로 쥐면 요렇게 꽉잡히는 알통도 딴딴하게 나와있다 얘”
맙소사. 바보같이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던 순진한 언니가 몰래 그런 상상을 다 하다니? 미국에서 간호사들이 주사를 줄 때 남자 엉덩이를 까버리고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면서 주사기를 찌른다고 거짓말 같지만 아직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여자가 바로 언니였다. 우리는 언니의 충격적인 비밀을 듣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었다.
어쩌다 주말 약속을 하고 저녁에 모두 모여 회식을 할 때 각자 남편 눈치보고 빨리 오겠다하고 나오기 때문에 언니 괜찮아? 하고 물으면 언니는 그때마다 “응, 우리 그이 재워놓고 나왔어”하고 말한다. 그냥 남편이 잔다고 하면 될것을 꼭 자기가 재워놓고 나왔단다. 모두들 속으로 엄마야! 하면서 입을 벌렸지만 언니는 재워놓고 나왔다는 그 말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사람이 말해주지 않으면 개인사정을 알턱이 없다. 그 언니가 어느날 갑자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혼자서 살짝 야반도주 해버렸다. 집에 가보니 남편은 반 기진한 상태로 넋이 나가있고 열댓살 먹은 아이들 둘이서 울고 있었다. 애들까지 팽개치고 도대체 무슨일로?! 언니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쩌다 심통나면 가게오는 사람이 거의 흑인들인데 아프리카는 지금쯤 덥겠지? 아프리카는 어떻고 하면서 큰 소리로 아프리카를 연발하면서 초를 치던 사람도 없으니 가게는 그야말로 너무 조용했다. 우리는 언니를 보고싶은 간절한 그리움과 어떤 실망과 안타까운 마음이 한테 엉켜 언니의 행보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여름이 가고 노동절날 우리는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카지노에 한번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말만 들었지 한번도 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길을 몰라 모두 버스를 탔다. 카지노측은 처음 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대목을 노렸는지 머신기계들이 동전만 까먹고 그냥 애가타서 졸도할 정도로 돈이 나오지 않았다.
돌아갈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우리는 빨리 빨리! 그러면서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어머나, 난데없이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 언니를 보았다.
어마 언니! 너무도 반갑고 놀란 나머지 모두 다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언니 등뒤에 지키고 서있던 시큐리티 가이드 두명이 손을 벌리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우리는 언니가 노는 판돈을 보고 그저 눈만 휘둥그레 굴렸다. 언니는 그렇게 통큰 여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해서 저런 큰돈이?! 평소 언니가 받던 일주일치 주급보다 더 많은 돈을 그냥 일 이초만에 딜러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얘, 얘, 버스 갈려고 해 빨리 빨리!”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움직이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죽자고 뛰어갔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조용한 침묵을 깨고 일행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얘 그정도면 괜찮네?”
그 말과 동시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벌떼같이 악을 쓰며 말을 한 사람에게 갖은 욕을 다 퍼부었다. 정작 말을 한 본인이 우리에게 한마디 말도없이 떠나가버린 야속한 언니나 되는 것처럼 한참 퍼붓다가 일행중 한사람이 말했다.
“얘 내가 도저히 못참겠다. 너는 모르지만 이건 우리 친한 친구 이름인데 너가 모르니까 알려줄께. 박 규.”
“어마마, 그 말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제야 생각난듯이 정신을 차리고 모두 다 깔깔 거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모두 너무 웃어서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모두 다 왜 그렇게 눈에 눈물이 맺혔던가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