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원인 있을 수 있어
솔직한 대화와 모범 보여줘야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 갑자기 자녀가 입을 봉한 채 말을 안 한 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다. 차라리 말대답이라도 하면, 불만이 무엇인지, 왜 화가 나있는지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묻는 말에조차 입을 봉하고 있는 정도가 되면,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될 수 있다.
집에 오면 입을 봉하고 화가나 있는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세상의 부조리나, 불공평한 인생에 대한 고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보다는 점점 심해지는 경쟁 분위기의 학교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자녀의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부모로부터 받는 심적 압박, 이런 경쟁과 기대 속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대한 좌절감 등이 합쳐서 갑자기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10대에 들어서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도 다양해진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못지않게, 원만치 못한 대인관계에서 받는 상처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베스트 프렌드와 말다툼을 했거나, 보이/걸 프렌드와 헤어지게 되었거나, 친구를 한 명도 못 사귀었거나, 왕따의 대상이 되었거나, 자기를 괴롭히는 애들이 있다거나 하는 사건들이 바로 그런 예들이다.
교사와의 관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유 없이 자기를 미워한다거나, 점수를 공정하게 주지 않는다거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벌을 주었다던가 하는 느낌이 있다면, 그 학기 내내 기분 좋지 않게 지낼 수 있다.
자녀가 일단 초등학교를 지나면, 학교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을 집에 와서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부모들이 경험한 바이다.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부모와 얘기하면 야단을 맞거나 일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거나, 가까운 친구와 얘기하는 것을 택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집에 와서는 입을 봉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때문에 화가 나서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도 많다. 친구들과는 신이 나서 떠들다가도, 일단 집에만 오면 입을 꽉 다물고 얘기를 안 한다면, 십중팔구 부모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그렇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아이들 가운데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어쩌다가 놀러간 친구 집이 놀랄 만큼 호사스럽거나, 친구가 몰고 온 새 차가 부모가 사준 생일선물이라고 했을 때, 방학 때마다 스키여행을 간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었을 때, 갑자기 그렇게 못해 주는 자신의 부모가 원망스러워질 수 있다.
매일 싸우는 부모, 별거, 이혼 후에도 자녀를 중간에 놓고 계속 신경전을 치르는 부모, 아이가 학교에 갔는지 안 갔는지, 공부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없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 나는 이왕 이렇게 되었지만 너만은 꼭 명문대학에 가서 유명한 사람이 되라고 압력을 넣는 부모,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수십 년 전 한국에서 살던 얘기를 꺼내는 부모, 삶의 스트레스를 술과 마약과 도박으로 풀어보려는 부모, 이런 부모들에게 일편단심 웃음 띤 얼굴로 대화를 나누려는 자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하면 화가 나서 입을 봉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제풀에 화가 풀릴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물론 화난 정도가 심각해서, 학교를 안 가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발전할 때에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에 대한 원망이 부모에 대한 이해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했던 타니아의 경우가 바로 시간이 흐르고, 차츰 철이 들면서 제풀에 화가 풀리게 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자녀와 솔직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녀와 집안의 어려운 경제문제나 부부 사이의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진솔한 태도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의견을 들어보는 방법을 취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뜻밖에 지금까지 철부지로 여겼던 아이가 어느새 사리를 판단하고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평소에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에게,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중요성과 양보와 희생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환경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기회를 찾아주는 것이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의욕상실 상태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단기여행을 시키거나, 주위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적은액수라도 돈을 벌어보게 하거나, 카운슬러나 교사에게 부탁해서 새로운 클럽활동에 참여시켜 지금까지의 타성적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서 새 생활의 틀을 시작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끝으로 이 역시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곤경에 처해 있어도, 이성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로 사태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면, 이를 본받아서 아이들도 좌절감과 화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 화를 풀고 다시 긍정적인 자녀로 돌아온다는 해피엔딩을 목표로 삼고, 부모들이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순진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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