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현대작가 12인전’ 강의 권미원 UCLA 교수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자신의 느낌을 의심하지 마세요. 바보처럼 느껴지고 겁이 나죠? 작품을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되서 혼란스럽죠? 그게 정상입니다. 뮤지엄은 언제나 관람자를 바보처럼 느끼게 만드니까요” 권미원 교수(UCLA 미술사)는 현대미술이 우리에게 씌우는 족쇄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그러니까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현대작가 12인전’을 대하며 곤혹스러웠던 우리의 경험은 정상이었던 것이다. 다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것을 권미원 교수는 정직하게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녀가 현대미술과 미술사에 관한 아주 실력 있는 교수가 아니었던들 우리는 또 의심과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전문가조차 ‘이게 뭐지’ 하는 것이 컨템퍼러리 아트
벌거벗은 채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해야 제대로 감상
8일 LA 카운티미술관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Flash in the East, Flash in the West)이란 제목으로 한국현대작가 12인전에 대해 강의한 권미원 교수를 인터뷰했다. 교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론적이고 학구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선입견은 그녀와의 1시간여 대화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그녀는 우리에게 벌거벗은 채로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하기를 권했다. 날것의 감상, 그대로가 가장 정직한 것이며 거기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그건 당신에게 의미 없는 작품이라고 말해 준,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그대로가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감상이지요. 미술을 잘 아는 나 같은 사람조차 잘 모르겠다, 이게 뭐지, 왜 이렇지, 하는 것이 현대 미술입니다”
권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뮤지엄 전시라 해서, 유명한 사람이 사들인 작품이라 해서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고 가르친다며 “이렇게 강의하면 너무들 좋아하는데, 그건 작가들도 미대 학생들도 다 비슷한 느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의 라크마 강의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데, 그녀는 거기서도 “이게 왜 한국 현대작가전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작가들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 외에 반 이상이 한국의 뿌리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라고 말해 열띤 호응을 얻었다. 강의 제목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작가들의 공간적 지리적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12인 모두 한국서 태어났지만 최정화 한 사람을 빼놓고는 모두 해외에서 공부했고 그 중 반 이상이 현재 해외에서 살거나 여기저기 이주하며 활동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 전혀 관련성 없는 작품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아무 설명 없이 작품을 일대일로 마주치는 경험, 그럼으로써 작품이 주는 본질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는 심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을 강조하는 권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서도호와 김수자의 것에 사람들이 가장 많은 호감을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작품이 주는 심미적 경험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으로 뿐 아니라 코와 귀와 모든 감각으로 느껴지는 체험, 작품과 관람자의 직접적인 교감, 말이나 글로 쓰는 것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감흥”이 심미적 경험이라고 설명한 권 교수는 현대에는 그런 교감을 주는 작품이 점점 없어져간다고 안타까워했다.
“현대인의 삶 자체에 그런 경험이 없어지거나 제한돼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학생들을 보아도 다들 스마트하고 정보는 무척 많은데 뭘 진지하게 보거나 묘사하거나, 자기 경험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에 서툴러요. 그러나 저는 그런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자신의 심미적 경험을 자기가 믿지 못하고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겁니다”
권 교수에게 그런 심미적 경험을 주는 작가는 누구일까?
쿠바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와 리처드 세라, 자코메티, 샤론 헤이즈,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인 권소원씨가 그들이라고 꼽는다.
“현대미술에 질서가 있었으면 해요. 역사적 감각을 지키는, 역사를 이어가고 연결하며 사회적 미술사적 관계가 살아 있는 작품들 말이죠. 그런 면에서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의 책임감이 크죠.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미원 교수는 11세였던 1972년 동아일보 특파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으며 UC버클리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이 대학원에서 사진 석사과정을 마쳤다. 1982년 한국의 건축사무소 ‘공간’에서 1년간 일했던 경험이 건축가의 진로를 접게 했고, 대신 시각예술 쪽으로 관심과 활동을 돌렸다. 위트니 뮤지엄의 큐레이터 팀에 속해 몇 개의 전시회를 만들기도 했던 그녀는 98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사와 이론 박사과정을 끝내면서 곧바로 UCLA 교수로 임용됐다.
건축을 공부한 경험은 그녀에게 특별한 유산을 남겨주었는데 공간과 지역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그것이다. 2002년 출판된 그녀의 책(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 MIT Press)이 장소 특수적인 예술에 관한 것이고 이에 관한 글도 많이 쓰고 있으며, 2012년 LA 현대미술관(MOCA)에서 필립 카이저 큐레이터와 공동으로 큐레이팅 할 전시 역시 공간과 지역에 관한 것이다. 이 전시는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까지 일어났던 ‘랜드 아트’(Land Art)를 조명하는 대형 기획전으로, 그녀에게는 이 운동이 현대미술에서 심미적 교감을 주는 마지막 작품들이었다고 말한다.
2009/10학년도부터 안식년에 들어간 권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랜드 아트들을 직접 둘러보는 한편 글도 쓰고 책도 내고 한국에서 강의도 할 계획이다. 한국의 미술교육이 낙후돼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녀는 대학원 수준의 미술교육으로 한국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숙희 기자>
권미원 교수가 라크마의 한국현대작가 12인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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