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장관, 문화계 인사 초청 깜짝 간담회
지원 인색한 한국문화원에 쏟아지는 쓴소리
뾰족한 대책없는 위로에 ‘봄 눈 녹듯’ 풀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초청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조찬간담회가 9일 오전 8시에 가든스윗 호텔에서 열렸다.
이것은 좀 느닷없는 ‘초청’이었는데, 바로 하루 전날인 8일 LA한국문화원(원장 김재원)으로부터 ‘소집’됐기 때문이다. 장관의 LA방문 일정은 어제오늘 정해진게 아니었을텐데, 갑자기 간담회가 급조된 이유를 물어보니 이곳 문화예술인들을 위로도 할 겸 건의사항도 들어보기 위한 자리라고 하였다.
위로? 무슨 위로? LA한국문화원 30년 역사에 한국의 문광부장관이 여럿 다녀갔어도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적은 한번도 없는 터라 다소 의아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우 출신의 유명한 장관님이 부르신다는데. 간담회에 가보니 다들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 분명해보였다.
무용, 문학, 영화, 서예, 미술, 음악, 국악, 사진, 민화, 공연기획 등 각분야의 단체장 25명이 통보 하루 만에 놀라울 정도의 출석률을 보이며 참석했다.
그 중에는 문화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인사들도 몇 명 있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많고 다양한 문화예술 단체장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절대 한 자리에 모을 수 없는 사람들조차 한국문화원이 전화 한마디로 이렇게 불러모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물론 유인촌 장관의 네임파워가 컸겠지만 문화원이 이런 자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으면서 그동안 한번도 그 파워를 사용해보지 않은 것은 좀 유감스럽게 느껴졌다.
유장관의 간단한 인사말 후에 식사가 나오면서 이곳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내용은 하나같이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 ‘지원 좀 더 해 달라’, ‘공연장이 없다’는 등의 얘기였고, 로컬 단체의 활동과 행사 지원에 인색한 한국문화원과 한국교육원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한 유장관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답답하시겠지만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느 곳이나 문화예술체육 분야는 대동소이하다. 한국이 이제 좀 나아졌다고 하고 수십년전에 비하면 국력과 경제규모가 굉장히 좋아졌지만 국내에서도 문화예술계의 이런 소리는 언제나 똑같다. 한국의 예산은 300조인데 이중 4개 부처(교육 국방 복지 건설)가 70%를 쓰고, 나머지 10개 부처가 30%를 나눠 쓴다. 문광부 예산은 2조8,000억원으로 적은 예산은 아니지만 대부분 인건비로 지출되고, 7개나 되는 분야(문화 예술 관광 체육 종교 홍보 언론 디지털 컨텐츠) 하나하나가 다 큰 것들이라 쪼개 쓰다보니 LA에까지 돌아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지원신청 건수의 10%밖에 주지 못하며, 가능하면 적은 돈을 많은 단체에 나눠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제는 현찰을 주지 않는 정책으로 바꿨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발전 가능성 있는 곳을 확실하게 지원하는 한편 공간지원이나 인력지원, 홍보 마케팅 등의 간접지원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또한 9월부터는 예술가들에게 최저생계비와 의료보험을 제공해 자립할 수 있는 혜택을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제도적 방법이 바뀌고 있으니 해외에 대한 지원도 바뀔 것이다. 더구나 참정권도 있어 앞으로 국내에서 더 신경 쓸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름대로 돌아가서 오늘 들은 얘기들 차근차근 정리하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애쓰겠다”
과연 유인촌 장관은 ‘선수’였다. “힘드시죠, 섭섭하시죠, 답답하실겁니다” 이런 추렴들을 잘 버무려 넣으면서, 또 “현장에 있었던 저니까 이런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식의 생색내기도 빼먹지 않으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위로도 하고, 설명도 하고, 억지스런 이야기들마저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그 많은 인사들을 설득하고 다독이는 모습에 보통 여유와 관록이 묻어나는게 아니었다.
진심어린 위로였는지, 정치적 제스처였는지, 너무도 훌륭한 연기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날 사람들은 무척 감동 받은 눈치였다. 일단 장관님이 불러주시고,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위로마저 해주셨으니, 앞으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언정, 또한 그동안의 역사로 보아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음은 거의 기정사실이건만, 진정으로 감동 받고 위로 받은 분위기가 넘쳐흘렀던 것이다.
유장관은 “다들 맺히신게 많은 거 같다”며 “해장국 먹으며 속이라도 확 푸셨으면 해서 만든 자리”라고 했는데 이날의 간담회는 정말로 ‘잘 만든 자리’였던 것 같다. 평소 늘 입 나와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유장관과의 아침 한끼, 기념사진 한 장에 속도 풀고 한도 풀고 조용히 돌아가는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문화원은 어쩌면 이런 극적인 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예정된 간담회였다면 다들 단단히 준비들을 하고 벼르고 나타나 장관 앞에서 문화원장을 곤혹스럽게 했을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날 사람들이 유장관을 향해 털어놓은 이야기는 모두 현지에서 일하는 문화원장을 향한 쓴소리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숙희 기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LA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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