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주의 한 침례교 목사가 행한 오바마 저주 설교가 동영상으로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스티브 앤더슨이라는 이름의 이 복음주의 목사는 ‘나는 왜 오바마를 증오하는가’라는 제목의 주일 설교를 통해 “오바마가 죽게 해 달라고, 또 지옥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오바마가 낙태를 지지하기 때문에 증오한다”고 밝힌 앤더슨 목사는 에드워드 케네디처럼 뇌암으로 죽기 바란다고 구체적인 소원(?)까지 덧붙였다.
목사 입에서, 그것도 주일 설교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힘든 내용이다. 앤더슨은 정식으로 신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신약성경의 절반을 줄줄 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뜨거움이 넘치는 사람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솟아오르는 뜨거움을 올바로 사용할만한 분별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진보적 성향의 오바마는 보수적 성향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 달가운 존재가 될 수 없다. 지난 대선이 한창 달아오르던 때 윌프레도 드 헤수스라는 이름의 한 히스패닉 복음주의 목사는 오바마를 지지했다가 보수 크리스천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수많은 증오 메일과 욕설이 날아들었다. 공격의 논지는 “어떻게 크리스천이 오바마를 지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오바마 집권 이후 보수진영은 그에 대한 증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에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작업의 선봉에 서 있는 대표적 인물이 보수채널인 폭스의 뉴스진행자인 글렌 벡이다.
멀끔하게 생긴 이 백인 사나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우상이다. 그는 방송에서 오바마를 겨냥한 선동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그의 방송은 오바마 등장으로 좌절한 보수주의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은다. “미국은 사회주의화 돼 가고 있으며 우리의 신과 믿음이 공격받고 있다”고 그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외칠 때 보수시청자들은 ‘아멘’의 심정으로 화답한다. 극단적 보수의 신념을 담아 낸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증오 바이러스 확산을 통해 보수층 결집에 성공한 벡은 그러나 얼마 전 혀를 한번 잘못 놀렸다가 곤경에 빠졌다. 자신의 뉴스쇼에서 오바마를 ‘인종주의자’라고 불렀다가 광고가 줄줄이 취소되는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잠시 주춤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독설을 멈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증오는 인간의 나약한 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밖으로 표출시켜 다른 대상에 고착시키는 유치한 정서이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드러냈던 증오가 바로 그랬다. 불안한 독일인들은 애꿎은 유대인들에게 그런 불안을 ‘투사’시켜 이들을 못살게 굴고 학살했다.
뉴욕타임스는 글렌 벡이 도덕적 교훈과 분노로 보수주의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신문의 지적이 암시하듯 증오 바이러스는 도덕주의자들 사이에서 더 쉽게 전염되고 더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관용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신종플루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증오 바이러스이다. 신종플루가 과거보다 훨씬 잦아진 이동과 교류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듯이 증오 바이러스 또한 기술의 발달에 의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증오 바이러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것의 확산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개인과 집단들에 의해 교묘하게 자행되는 ‘증오 마케팅’이다. 이슬람권의 테러리스트 충원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념의 극단에 서 있는 논객들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수입을 높이는데 증오 바이러스를 악용한다. 또 갱스터 래퍼들은 소외계층의 기득권 증오를 부추기는 노래로 부와 인기를 챙긴다.
쉽게 열광하는 사회는 증오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집단적 열광은 광기와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사회는 증오 바이러스의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황빠니 박빠니 노빠니 해서 특정인들에 대해 쉽게 열광하는 기질은 증오 바이러스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 된다. 게다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특수상황과 끝날 줄 모르는 이념 논쟁은 증오 바이러스 제거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바마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지난 2월 국가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다양한 종교들이 모든 교리에서 하나가 될 수는 없겠지만 증오를 핵심교리로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그를 증오한다고 설교한 목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오바마를 지옥에 보내고 싶다던 이 목사는 나중에 어디로 가게 될까. 절대자가 어떤 판단을 할지 그것 또한 궁금해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