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 3년반만에 재개관하는 LA카운티 미술관의 한국관은 해머 빌딩(The Frances and Armand Hammer Building) 1층에 위치해있다. 라크마 정문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오면 마주 보이는 건물로, 바로 옆에 박스오피스와 안내 데스크, 레스토랑, 기프트샵 등이 위치해있어 관람객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공간이다. 새로 문을 여는 라크마 한국관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거나 보아온 고미술품 전시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전시품은 분명 몇백년의 세월을 담은 유물들이지만 이를 보여주는 전시장은 현대미술관처럼 산뜻하고 세련되게 꾸며졌다. 우중충한 실내와 후줄근한 족자, 답답해 보이는 표구 같은 것은 없고, 전시품이 깔끔하게 돋보이도록 특수제작된 플렉시 글래스 진열장이 전통과 현대가 완벽하게 조화된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이 진열장은 한국의 원오원 건축사무소에서 디자인하여 이곳서 제작한 것이다. 한국관에 들어서면 중앙에 주제전시품이 전시돼있고(이번 재개관전의 경우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를 중심을 왼쪽으로 돌아 5개의 전시실(회화, 규방, 선비, 불교, 도자)을 거치면서 다시 중앙으로 나오게 된다. 이 구조는 라크마 전시 디자이너들이 한국 전통건축물을 연구, 문을 열면 건넌방이 나오고, 문을 열면 또 방이 나오면서 여러개의 방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한옥의 구조를 본 따 디자인한 것이다.
LA카운티 미술관의 한 직원이 한국관 입구에 ‘코리안 아트’ 글자를 붙이고 있다.
특수제작된 플렉시 글래스 진열장, 산뜻하고 세련미 더해
여성 문화 엿볼 수 있는 ‘규방실’, 도편 전시관 등 눈길
한국관의 재개관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맡아온 김현정 큐레이터는 “한국의 전통미술을 21세기에 내놓으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현대적 감각의 아이디어로 재해석하여 심플하면서도 한국적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공간 창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자재들도 나무, 한지, 창호지, 장판지 등을 사용해 글자 하나, 종이 하나, 바닥재 하나에 섬세한 디자인을 살렸다. 김 큐레이터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한옥 문짝을 가져다 이를 모델로 똑같은 감각의 재질과 색깔의 나무를 만드는데 한달 이상 걸렸다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처음에 보이는 벽에 붙은 글자(Korean Art)가 바로 그렇게 만든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한국관의 5개 전시실 중 특히 눈에 띄는 곳이 18~19세기 여성들의 섬세한 장신구가 전시된 규방실(Women’s Quaters)이다. 김 큐레이터는 “한국의 여성문화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조명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를 위해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여성장신구 23점을 장기대여 해주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각종 섬세한 노리개, 비녀, 은장도, 귀후비개 꽂이 등이 전시되고 모성애를 뜻하는 화조화, 보자기, 결혼예복인 활옷 등도 소개된다.
같은 공간의 다른 쪽은 남성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선비실(Literati Gallery)로 꾸며졌는데 주로 죽음을 초월한 한국 선비문화에 초점을 맞춰 각종 묘지석과 장례식에서 위패를 모시는 가마 등이 전시되고, 사방탁자를 본 따 제작된 진열장에는 남성들이 사용하던 지물들이 놓여진다.
이 외에 라크마 한국컬렉션의 주요작품들인 나한 덕세위, 신정왕후 환갑잔치, 일흔살의 윤봉구 초상, 아미타불과 복장기, 동자상, 청화백자 용구름무늬 항아리 등이 전시되고, 불교미술실에 최초로 전시되는 시왕도가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한국으로 가져가 복원 및 보존처리되어 지난 달 도착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가장 우수하고 다양한 한국전통미술품 컬렉션을 가진 라크마는 불교회화, 일반회화, 도자기, 공예, 조각 등 500여점과 도자기 파편(shards) 850점을 소장하고 있다. 새 한국관에는 이중 100여점의 미술품과 140점의 도편들이 전시되며, 앞으로 대주제와 소주제 별로 구분하여 전시품이 바뀌거나, 일부는 정기적으로 로테이션하며 때때로 국보 수준의 작품을 대여 전시할 계획이다.
도자기 파편은 한국 도예품에 심취한 일본의 아사카와 형제가 일제시대 한반도 전역의 도요지에서 수집한 깨진 도자기 조각들로, 1985년 그레고리 헨더슨 주한대사가 구입하여 라크마에 기증한 것이다. 이 도편들은 한국관의 마지막 전시공간에 지방 8도를 따라 구분하여 전시된다.
김 큐레이터는 “우리가 보는 것은 역사속의 파편들”이라고 말하고 “각자가 본 파편들로 한국 문화와 역사의 전체 스토리를 만들어본 후 다시 파편으로 나오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라크마는 9일 오후 7시 후원자들과 주요인사들을 초청한 오프닝 리셉션을 연후 10일 한국관을 정식 재개관한다. 리셉션에는 한국의 국립박물관 최광식 관장과 국제교류재단 임성준 이사장이 참석한다. 12일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심야 축하행사와 뮤즈 애프터 파티가 열리며, 13일 오후 2시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이번에 대여전시되는 금동미륵반가상과 관련된 ‘한국 불교건축물과 조각의 이미지’ 강의를 브라운 오디토리엄에서 갖는다.
동자상
김현정 큐레이터
용구름무늬 청화백자
<글 정숙희 기자·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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