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 벤 버냉키가 2010년 1월31일로 끝나는 제1기 임기를 앞두고 앞으로 4년의 제2기 임기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재임명을 받았다. 오바마가 버냉키를 재임명한 이유로 그의 “대담한 정책수행과 상자 속에 머물지 않은 생각”을 칭찬하면서 그로 인해 미국경제가 대공황에 빠질지도 모를 위험을 모면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공황의 늪에 침몰되지 아니하고 서행이나마 회복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오바마의 베일아웃 및 스티뮬러스 정책과 맞물리어 버냉키의 전례 없는 과감한 금융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고 일단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버냉키는 2007년 말부터 경제와 금융위기의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연방준비은행이 역사상 취해 오지 않았던 과감한 금융정책을 단행하였다. 과감한 금융정책이란 은행과 기업에 수천억 달러의 융자대여를 해 준다든지, 단기금리를 거의 제로로 낮춘다든지 모기지시장의 재정관리를 관장하다든지 하는 금융완화정책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이 마이너스이고 실업률이 10%를 바라보고 있어서 아직은 경제침체가 심각한 것은 현실이지만 금년 3월에 6,500대까지 폭락했던 다우존스지수가 최근 9,500대까지 회복하고 있으며 금번 경제,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주택시장도 약간 움직이는 기미를 보이는 것은 버냉키의 과감한 금융정책 덕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2기 임기를 맞이하는 버냉키는 지금까지 수행해 온 과감한 금융정책을 거두어 드려서 금융시장을 정상궤도로 진입케 하는 앞으로의 과정에 있어서 어찌 보면 과감한 금융정책의 수행보다 더 어려운 경제정책상의 고민을 안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버냉키가 안고 있는 고민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고민은 과감한 완화금융정책을 언제 거두어 드려 긴축금융정책을 시작할 것이냐 하는 시기와 속도에 관한 고민이다.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이다.
경제회복의 진행이 순조롭게 진행됨을 감지하여 너무 빨리 긴축금융으로 정책방향을 바꾸게 되는 경우, 즉 대량융자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하고 제로에 가까운 단기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하게 되면 진행되고 있는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게 되고 국민경제를 다시 침체로 몰고 갈 위험이 있게 된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회복의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1937년에 연방준비은행이 긴축금융정책을 빨리 실시하여 경제회복을 더디게 하고 침체의 국면으로 몰고 간 실책의 역사가 버냉키의 고민을 심각하게 해 주다.
반대로 연방준비은행이 너무 늦게 긴축금융의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취하게 되면 방만한 완화금융으로 인하여 고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어 국민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제2차의 거품을 가져올지 모르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1970년대와 1980년 초 에너지파동과 함께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완화금융으로 인하여 높은 실업율과 함께 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경험한 쓰라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버냉키가 긴축금융을 언제 실시하든 너무 지나치게 하게 되면 경제계와 정치계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는 고민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 당시 연방준비은행 이사장이었던 폴 볼커가 연방자금 이자율을 20%에 이를 정도로 높게 올리는 긴축금융을 시행하였을 때에 농부들, 기업가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백악관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은 바 있다.
1990년 초 경제침체를 맞아 그 당시 연방준비은행 의장이었던 그린스팬이 빨리 이자율을 내리지 않아 아버지 부시대통령의 재선실패를 결과하게 되었다고 책망을 받은 예도 있다.
버냉키의 둘째 고민은 연방준비은행의 금융정책수행 독립성에 대한 의회로부터 오는 도전이다.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4년 임기로 의회 인준하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금융정책수립과 수행에 있어서 행정부나 의회로부터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근래 연방준비은행의 방대하고 과감한 금융정책수행을 직면하고서 의회로부터 연방준비은행을 감찰해야 한다고 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연방준비은행의 이자율결정을 정부감독청(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이 감찰하게 하는 법안이 양당 250명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으로 현재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벤 버냉키의 연방준비은행 의장 재임명은 회복의 기미가 엿보이는 금융시장에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미국경제의 회복이 제2의 침체나 고도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않고 순탄하게 진행되고 연방준비은행의 독립적 금융정책수행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버냉키가 안고 있는 금융정책상 및 정치상의 고민을 창조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백순 / 연방노동부 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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