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기획전 ‘한국현대작가 12인’ - 한인 미술계 인사 3인 좌담회
지난 6월28일 시작된 LA카운티 미술관의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현대작가 12인전’이 한인사회는 물론 주류 미술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명한 이 전시회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을 한데 모은 기획전으로, 이를 보는 관점과 의견 역시 그 스펙트럼만큼이나 화려하고 다양하다. 오는 9월20일 폐막을 앞두고 현대미술에 폭넓은 이해를 가진 세 사람이 이번 전시에 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영순(작가·UC어바인 미대 교수), 오지영(화가), 메이 정(앤드류 샤이어 갤러리 관장)이 나눈 대화를 흐름에 따라 기록했다.
비디오·일상용품 통한 시각적 접근, 현대미술 이해 도와
‘다문화서 소통’ 미주 한인들, 아이러닉한 작품 공감할 것
한국의 특수 상황, 예술을 통해 인류보편적 정서로 재해석
▲민영순-상당히 강렬한 전시입니다. 해외에서 한국현대미술을 한 군데 모은 전시로는 처음이어서 굉장히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2명의 작가들로만 기획, 다른 쇼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 편인데도 그 효과는 굉장해요.
▲메이 정-중국과 일본에 비해 세계 미술계의 인지도가 낮았던 한국현대미술이 세계로 나가는 첫 스텝이자 과정이라고 봅니다. 한국미술이 가고 있는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고 좋은 쇼라고 평가됩니다.
▲오지영-큐레이터들이 ‘한국현대작가 12인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많은 중압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기획전에는 큐레이터의 시각과 견해, 취향이 반영되게 마련인데 이 전시는 매우 개념적인 전시로 느껴져요. 전시의 다양성이 높이 평가할 만하며 한국인 작가들이 세계미술과 겨루는 작품을 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한국의 현대미술이 이와 같다고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민영순-너무 좋은 아티스트가 너무 많은데 왜 이 12명인가, 누가 선정되고 누구는 안 됐나 하는 질문도 물론 있을 수 있지요. 한국의 큐레이터 김선정은 12명 중에서도 박이소와 최정화를 가장 중요한 작가로 본 듯합니다. 두 사람은 매우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개념적이라는 면에서는 같아요. 박이소는 매우 시적이면서 개념적인데 반해 최정화는 대중적인 팝 아티스트로서 개념적입니다. 김선정이 큐레이트를 잘한 것 같습니다.
▲메이 정-일각에서는 ‘김선정 쇼’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테이스트가 많이 반영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반 관객에게는 좀 헤비한 컨셉추얼 쇼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이렇게도 볼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면 그 역할에 아주 충실한 전시입니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아닌 비디오나 조명, 텍스트, 일상용품 등을 통해 시각적 표현을 할 수 있음을 보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첫 충격이라 생각합니다.
▲오지영-작가들에게도 에너지를 줍니다. 이 작가의 인스피레이션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내가 그동안 해온 방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변화의 욕구도 갖게 되지요. 화가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걸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들 너무나 기발한 창의성에 같은 화가로서 찬사를 보냅니다.
▲민영순-전시회의 제목 ‘당신의 밝은 미래’는 아이러닉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며 희망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선동적인 선전구호로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박이소가 동명의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회의적이며 멜랑콜리한 분위기였다고 봅니다. 전등의 긴 철제다리와 전구 씌운 갓 등 별 볼일 없는 외관도 그렇고, 강한 불빛이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벽을 비추는 것도 공허하지요.
▲오지영-그런 아이러닉 요소를 모든 작가들이 갖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미술은 보고 금방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게 뭐야?”하는 작품들이 많아요. 미술 배경을 갖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의 반응이 걱정도 됩니다.
▲민영순-그런 작품은 작가들조차 이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모든 삶과 문화가 아이러닉하지 않습니까? 특히 격동의 역사와 문화를 겪어온 미주 한인들의 삶은 아주 많은 것들이 응축돼 있기 때문에 예술의 아이러니를 이해하고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오지영-하지만 임민욱의 ‘잘못된 질문’에서 택시운전수의 얘기나 김홍석의 ‘와일드 코리아’ 같은 작품을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란과 배경을 모르는 미국인들, 심지어 우리 2세들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들은 어떻게 보고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민영순-그것은 이 전시뿐 아니라 모든 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지요. LACMA에 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시간을 갖고 찾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볼 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메이 정-어떤 게 한국적이고 어떤 게 세계적인가 하는 것이 구별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화는 섞이면서도 거기에서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나오기 때문이죠. 좋은 작가는 일상적 언어로 우주 보편적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예술의 기능이 작가만의 은밀한, 혹은 한 국가의 특정한 경험을 국제적인 공통 경험으로 읽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때 한국의 특수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른 문화배경의 관객에게 이해되는데 장애가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영순-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최정화, 박이소, 김수자, 양혜규, 그리고 김범의 것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양혜규의 팔리지 않은 작품을 쌓아놓은 ‘스토리지 피스’는 우리 작가들이 다들 느끼고 공감하는 것, 그 어두운 비밀을 표현한 작품이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오지영-나도 지금 창고에 풀지도 않은 채 쌓아놓은 작품들이 있답니다.
▲메이 정-맞아요. 갤러리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박이소의 작품이 가장 좋았습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것, 섬세하고 슬프기도 하며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은 왠지 모를 감동과 함께 좋은 작품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문화적 경계의 현실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유머 있게 풀어간 듯하여 따뜻함이 느껴졌고 뉴욕에서 한국으로 이어졌던 그의 예술이 이민사회에서 재현된 듯해 공감이 컸습니다.
▲오지영-나에게 감흥을 가장 많이 일으킨 작품은 김수자의 ‘바늘여인’이었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에 가서 자신의 몸을 사용해 세계를 끌어안는 퍼포먼스는 글로벌의 영향을 가장 드러매틱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이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대변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메이 정-그 외에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한 것은 서도호와 최정화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집을 소재로 한 서도호의 작품은 섬세하고 시각적이면서 이해가 쉽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가장 가깝게 소통한다고 보여 집니다.
▲오지영-최정화의 작업도 인기 있어 보입니다. 강렬한 색깔의 싸구려 플래스틱 용기들은 많은 이들을 즐겁게 했으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미술적 성격도 띠고 있으니까요. 또한 전준호의 ‘백악관’도 서정적인 면이 가미되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민영순-임민욱의 작업도 인상적이었고요, 박주연의 서울역 프로젝트도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장영혜 중공업은 온라인으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데 LACMA 전시에서 그 특별한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메이 정-이번 전시회는 LACMA와 같은 대형 미술관에서 한국이라는 타이틀로 기획한 전시이니만큼 모든 미주 한인들이 관람하고 관심을 보여 우리의 문화 수준을 알리고 드높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메이 정(앤드류 샤이어 갤러리 관장)
민영순(UC어바인 미대 교수)
오지영(화가)
<글 정숙희·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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