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부패한데다가 두 셋 유력한 정치가문이 기업세력과 결탁해 파워를 휘두르는 정치가 미국의 정치다.” 러시아가 바라보는 미국의 정치라고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건 말하자면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면 그렇게도 보인다. 선거 때만 되면 낯익은 이름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이른바 정치명문(名門)이라는 집안들로, 그들의 각축장이 미국의 정치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치와 관련된 각종 통계들도 그렇다. 연반상원 의원 중 다섯 명의 하나는 가업(家業)이라도 되는 양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집안 덕에 그 자리에 오른 하원의원도 한 둘이 아니다.
지방 무대로 눈을 돌리면 정치명문의 파워 독점 현상은 더 심하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는 현대판 귀족정치로, 한 때 경멸의 대상이었던 족벌정치가 표면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러면 이것이 미국 정치의 전부 다인가.
한쪽에서는 분명 정치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민족 산업국가 중 최초로 흑인대통령을 뽑은 나라가 미국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바로 이 모순된 현상은 미국 정치의 다양성을, 또 미국정치가 지닌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내면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러면서도 진취적인 결단을 해나간다. 이런 토양의 미국정치에서 정치명문의 정치세습을 단순히 족벌주의의 대두로만 볼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한 정치명문출신 정치인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정치명문출신이란 사실은) 축복이기 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위대한 유산을 남긴 선대(先代)와 자주 비교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정치명문으로서의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숱한 정치명문들이 존재했었다. 건국 초기 애덤스 대통령 집안이 그 효시다. 볼드윈, 셔먼 등도 초창기 미국정계를 주름잡은 정치명문의 이름들이다. 후대로 들어오면서 그 정치명문의 족보가 바뀐다. 옛 가문들이 생명력을,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새로운 왕조들이 탄생해온 것이다. 무엇이 그러면 정치명문을 가능케 하고 있나.
“명문가의 조건은 부나 명예가 아니다. 오랜 전통의 명문가는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선조와 그 뜻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지닌 후손의 합작품이다. 천년동안 존속했던 로마 제국은 바로 확장된 명문가 이야기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로마인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은 가문의 이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로마 정신으로 구현됐고 로마의 명문가는 공동체정신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역할을 했다. 명문가가 명문가가 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로마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에드워드 케네디에 대한 찬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진보정치의 대부(代父)였다. 현대 미국의회의 산 증인이었다.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이었다 등등.” 47년 의정생활을 뒤로 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그에 대해 내려지는 평가다.
또 다른 지적도 뒤따른다. 두 형, 존과 로버트가 비운에 간 정치명문 케네디가의 비극과 관련된 것으로, 결코 왕이 되지 못할 운명의 ‘영원한 왕자’가 그 평가의 하나다.
그가 남긴 찬란한 의정상의 업적에다가, 케네디가의 비운만 부각됐다. 그리고 개인적 약점은 간과됐다. 저 세상으로 간 마지막 카멜롯 왕자에 대한 헌정사라도 보내듯이. 케네디 집안의 마지막 형제 ‘테디 케네디’스토리의 진실은 그러면 과연 무엇일까.
그 단초는 ‘차파퀴딕 스토리’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본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생명을 끊을 뻔했던 차파퀴티 섬에서의 음주운전사건 말이다. 이 사건을 통해 카멜롯의 왕자는 인간임이 드러났다. 그것도 한 여인의 죽음을 방치한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으로.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역사의 인물들, 특히 성경의 인물들이 그랬던 것 같이. 모세는 한 때의 혈기를 못 참았고, 베드로는 한 때 예수를 배반했던 것처럼 그에게는 차파퀴티 악몽이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떨치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카멜롯 왕자로서 부여받은 소명에 충실하고자 몸부림 쳤다. 그 결과가 위대한 상원의원의 탄생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 자들을 향한 그의 약속을 평생 지켜나간 것이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다른 게 아니다. 신화의 주인공이 아닌 약점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한 그에 대한 찬사다.
명문가 출신으로 없는 자를 위해 헌신해온 그라쿠스 형제 이야기는 바로 로마 이야기다. 케네디 이야기는 위대한 미국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땅에서 왕조를 건설한 이민자의 귀감이기도 하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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