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을 털어가며 독도 지키기와 동해 알리기에 헌신하고 있는 가수 김장훈이 얼마 전 또 다시 일을 벌였다. 광복절을 앞두고 미국의 유력지들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잇달아 냈다. 가수생활을 하며 번 돈 거의 모두를 남 돕는 일에 써 와 ‘기부천사’로 불리는 김장훈은 거액의 광고비를 부담하며 다시 한번 뜨거운 나라 사랑을 보여줬다.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볼 때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는 바다는 ‘동해’ 혹은 ‘한국해’라 부르는 것이 훨씬 타당성을 갖는다. 학자들이 수집한 사료들은 대부분 이 바다가 이런 이름들로 불려 왔음을 확인시켜 준다. 유럽에서도 ‘동해’ 혹은 ‘한국해’로 부르던 바다가 ‘일본해’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아시아의 패자로 등장한 19세기 말부터였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득세하면서 외국 지도에 이 바다의 명칭이 ‘일본해’로 바뀌더니 이제 국제사회에서는 ‘일본해’가 대세로 자리 잡은 형국이 됐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한술 더 떠 아예 한국인들에게도 ‘일본해’라는 이름을 쓰도록 설득작업을 벌여야 한다며 오만을 떨고 있다. 이런 언어도단의 주장에 요미우리 같은 일본의 우익신문들까지 합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해’의 명칭을 둘러싼 현재의 판세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록에 근거한 판단은 한국 측에 기울어 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역학관계로 보면 아직은 일본의 입김이 강한 형국이다. 김장훈의 광고는 이런 판세를 뒤집어 보자는 호소이자 외침이다. 민간 차원에서 지속되는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거둬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나라들과 지도 제작사가 조금씩 늘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 이 캠페인의 구체적인 목표를 되짚어보고 그에 맞는 전략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두 나라 사이의 바다를 한국 사람들은 ‘동해’로, 일본 사람들은 ‘일본해’로 계속 부르고 표기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바뀌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로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한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이 바다가 일본 입장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데 동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조심스레 대답한 적이 있다. 방향과 이름이 다른데서 오는 인지부조화를 고려한다면 전혀 일리가 없는 억지로만 치부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본다면 중국이 자기 나라 동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 하지 않고 ‘황해’라 칭하는 것은, 이곳을 ‘서해’라 부르는 한국으로서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일본해’를 받아들일 수 없듯 일본인들에게 ‘동해’를 강요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두 나라가 아닌 국제사회에서의 공식 명칭이다. 그간의 노력으로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일정한 성과이지만 냉정히 보면 한계가 드러난다. ‘동해’는 한국과 즉각 연결되지 않는 반면 ‘일본해’는 여전히 일본에 귀속된 바다라는 이미지를 풍겨주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동해’와 ‘일본해’ 병기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는 ‘일본해’라는 이름을 포기하도록 제 3의 명칭을 마련해 국제사회와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보다 더 현실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올해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전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가 여론의 역풍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군대와 한일 간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국민정서법에 의한 몰매를 각오해야 하는 곳이 한국이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는 힘겨루기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동해’ 표기가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일본해’라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도록 유도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이런 주장과 제안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오랜 세월 한일 간 문제를 지배해 온 감정은 비분강개였다. 그러나 유연함이 결여된 비분강개는 정말 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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