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의 의료보험 개혁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개혁의 중심인 오바마 대통령을 히틀러로 만든 포스터가 등장하는 등 의료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또 반대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데이비드 스캇 하원의원의 사무실 안내판에 나치의 상징인 철십자 문양 스프레이가 뿌려져 경찰이 조사에 나서고, 해당 의원에 대한 신변보호가 강화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우리도 피부로 느끼듯이 선진화된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 미국은 닉슨 행정부 시절인 1971년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며 국가 의료보험 시스템이 아니라, 민간 보험회사가 가입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민간보험 체계를 기반으로 메디케어, 메디케어드 등의 사회복지 제도가 각각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의해 운영된다. 미국인 중 민간 의료가입자는 35%이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각세계 최초로 민영 의료보험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럽이나 한국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각 전 국민의 19%, 15%를 차지한다. 그 외에는 비싼 보험료 탓에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08년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는 미 의료보험 시스템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한 남자는 나무를 자르다 중지와 약지손가락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는데 손가락 봉합에 중지는 6만달러, 약지는 1만2000달러가 들기 때문에 돈이 부족하여 약지 접합만 받는다.
또한 보험료가 싼 대신 보장범위가 작은 상품에 가입했다가 파산한 사람, 비싼 보험료를 지불했는데도 보험회사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수술비나 치료비를 거부하여 죽어간 사례 등이 나온다. “안 아프길 기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극중의 대사가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현재 2조달러 이상을 의료비로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보다 1인당 50%를 더 지출하고 최근 10년간 의료보험료가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보험자이고, 진료의 질은 낮으며 병원비를 걱정하여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개인 파산자의 62%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보고가 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는 너무도 큰 구멍이 나 있다. 현실이 이 정도라면 미 의료보험 개혁은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인데 찬반 논쟁이 왜 갈수록 과격화, 극단화 되는 것일까. 결국은 이기주의적 발상이 문제다. 입으로는 ‘나눔의 삶’을 떠들어도 막상 의료보험 개혁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이전에도 미국은 수차례 의료보험 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보수진영과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좌초되었다.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현재의 경제적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의료보험을 개혁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하며 빚더미에 파묻히게 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겁을 준다.
또 불특정 다수의 무능력자들이나 불법체류자들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려고 매일 일하러 가야 하느냐는 자극적인 광고들로 국민들을 선동한다. 골수 보주주의자들은 지금 물을 만났다.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오바마 정부에 넘겨준 기득권을 회복하려 벼르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돈이 없어서, 혹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을 외면한 채 그들이 지키려는 기득권이란 언제든지 도전 받을 수 있다.
대외적으로 효율성과 신속함으로 무장한 아시아 국가들이 무섭게 급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의료분야에서도 고학력과 IT 기술을 접목하여 미국 의료체제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이란 거대한 공룡이 변화를 계속 기피할 경우 결국 뒤에 오는 자들에게 추월당하게 될 것이다.
당장 눈앞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개혁을 더 미루다가는 더욱 손을 대기 힘들어진다. 가진 자들은 서민들을 위해 조금 더 가진 것을 내려놓는 취지로 의료보험 개혁에 동참하여야 한다. 진정한 기득권이란 단단한 대중의 지지 위에 우뚝 설 때 빛을 발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제나 추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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