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국 문단에서 이름있는 문인들이 LA를 방문한다. 여러 문학단체들이 마련하는 문학행사에 강사로 초청되는 것이다.
올해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시인 황동규 안도현 도종환, 소설가 윤후명, 평론가 유성호 최동호 교수 등이 초청됐고, 비공개적으로 정목일 수필가와 허형만 시인이 한 동호단체의 초청으로 다녀갔으며, 가을에는 수필가 박양근 교수의 강연이 예정돼있다.
해변문학제, 여름문학캠프, 여름문학축제, 가을문학세미나, 윤동주문학의밤…
문학단체가 많다보니 비슷비슷한 이름의 행사들이 줄줄이 열리는데, 문인들은 여기저기 풍성한 글 잔치를 찾아다니며 배부르게 강연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문학단체들 간에 크고 작은 알력이 상존하다보니 서로 눈치 보느라 가고 싶은 행사마다 쫓아다니는 일이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사실 단체가 많은 이유도, 비슷한 행사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사람들끼리 싸우다가 너도 나도 만들어내면서 그리 된 것이니, 문단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 배경과 파벌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올해는 매년 3개 단체가 연합으로 열어오던 한 문학제가 단체들 간의 반목으로 인하여 3개 문학제로 갈라졌고, 2개의 대형행사가 같은 날 개최되는 바람에 문인 숫자가 빤한 문단의 여름이 더욱 시끄럽고 치열했다.
문인 한사람을 강사로 모시는 비용은 항공료 강연비 호텔체제비 등 하여 2,000여 달러가 든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행사는 그 돈이 아까울 정도로 프로그램이 부실하고, 어떤 행사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순서를 끼워넣는 바람에 정작 문학강연은 20분도 안 돼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또 어떤 행사는 강연장에 문인은 몇 명 없고 합창단, 동창회, 교인 등 문학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동원’해 머릿수를 채웠다는 얘기도 들려오는 등 과연 무엇을 위한 문학행사들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한 단체가 돈 들여 초청해온 강사를 다른 단체에서 ‘공짜로’ 데려다가 자기네 강사로 초청하는 일도 벌어져 문단의 빈축을 사기도 한다. 강사의 인맥을 이용해 “이왕 오신 김에”하며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어놓는 것인데, 그야말로 기왕 먼 길 오신 김에 한 말씀 더 하시도록 하는 것을 나쁘다 할 수는 없느나 돈 거래가 있었던 행사라면 여기에도 ‘상도덕’이란게 있어야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돈을 함께 부담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초청자에게 양해를 구한다든지 인사로나마 알리는 예의는 갖춰야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본 강연의 날짜보다 앞서서 자기네 행사를 잡는다거나, 마치 자기네가 초청해온 것처럼 떠벌이는 일도 있어서 말많고 탈많은 문단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편 한국 문단에 누가 더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느냐가 미주 문단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유명 문인이 오면 그의 스케줄 관리를 맡은 사람의 유세가 대단해지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책에서만 보던 문인을 한번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여서 함께 식사라도 하기를 소원하건만 주최 측에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을 반드시 통하도록 독점하는 탓에 문인들의 원성을 사거나 심지어 싸움으로까지 발전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유명 문인 아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 앞에 내세워 강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LA에 도착하자마자 신문사로 실려온 한 원로시인은 자신이 한국서 통보받은 공식행사는 강연 2회밖에 없는데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신문사 인터뷰, 방송 인터뷰는 물론 저녁에도 모임이 있어서 끌려 다니느라 피곤해 견딜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인터뷰를 10분 만에 끝내드린 적도 있다.
이런 저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인들은 여름에 LA의 문학제 강사로 초청받기를 은근히 바란다고 한다. 일부러도 미국여행을 오는데, 경비 한 푼 안 들이고 여름휴가 겸 해서 올 수 있는데다 일단 오면 팬들로부터 귀빈 대접받고 강사료까지 받으니 이런 일석삼조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대학교수로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초청장을 받고 나갔다 오면 해외연수한 것으로 쳐주기 때문에 나오고 싶어 다리를 놓고 줄을 대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다들 글 쓰는 일로 이렇게 열심히면 얼마나 좋을까. 도종환 시인은 “자기 이름과 함께 남을 한편의 좋은 시”를 쓰라고 했다. 까짓거 한편이 뭐 그리 어려우랴, 글 쓰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문단의 여름은 올해도 뜨겁다.
정숙희 특집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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